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친 다음 날 아침, 예수 그리스도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따라서 갈보리 정상으로 올라간다. 자신이 매기에는 너무 무거운 십자가를 힘에 겨워 내려놓은 9개의 장소에서 쓰러졌다, 호송관의 채찍을 맞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정상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호송관이 창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찔러서 뿜어나온 피가 온몸을 적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세상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하늘을 응시하며 하나님께 마지막 고백을 한다.
“쿼바디스(QUO VADIS)” 주님, 어디로 가오리까?의 뜻이다. 인간으로 사신 세상에서의 힘든 고난에 대한 연민과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는 애틋한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곁으로 떠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聖子), 하나님이 되셨다.
사망한지 3일 후에 예수는 부활하시어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났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있음을 증명하였다. 부활의 의미는 세상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진리를 깨닫고 행하면 사람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 있다. 오늘의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점점 등을 돌리고 있다. 왜 그럴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인은 싫다고 한다. 간디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은 친절하기보다는 공격적이고, 섬기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인 기복적이고, 이기적이며 겸손하기보다는 교만해 보인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의 진리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일탈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본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바란다. 여기 그리스도인답게 평생을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을 가장 겸손하게 빈자를 섬기는 삶을 산 사람을 소개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서 으뜸을 차지한 삐에르 신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카톨릭 사제로 엠마우스 빈민구호 공동체를 설립해 평생 빈민 구호 운동에 몸을 바쳤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자살을 하기 직전에 삐에르 신부를 찾았다. 가정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로 파탄 속에 놓여 죽을 수밖에 없다고 고해 성사를 했다.
그의 사정을 다 듣고 난 삐에르 신부는, “충분히 자살할 이유가 있네요. 일이 그렇게 되었으면 살 수가 없네요. 자살을 하세요. 그렇지만 죽기 전에 나의 일을 좀 도와주신 후에 죽으면 안되겠습니까?” 하고 청년에게 부탁했다. “뭐, 어차피 죽을 건데, 죽기 전에 신부님을 도와드리지요.” 청년은 신부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이 도울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집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고,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을 돌보고, 청소하고, 빈자들을 돌보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듣고 난 청년은 큰 감동을 받아 자신의 변화된 마음을 신부께 고백한다.
“신부님께서 제게 돈을 주었든지, 제가 살 수 있는 거처를 제공해 주셨다면, 자살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신부님은 제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인 제가 누구를 위해 할 수 있다는 일이 있다니요… 제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가 있다니요… 저는 신부님을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면서 사는, 제가 살아야 할 진정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 청년은 삐에르 신부와 함께 빈자를 섬기는 사역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사랑과 행복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겸손해진다. 사람들은 남이 더 많이 가진 것에 질투하고 탐욕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비교의 사다리에서 더 올라갈수록 위험해지고 추락하여 불행해질 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하고 말이다.
사랑과 행복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지극정성으로 행하고 행복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당신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칭송을 받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할 모습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며 로라 브레탄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흠모하며 부르는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노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듣는다.
<
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