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느닷없이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대체로 음식점이나 베이커리가 만남의 장소가 된다. 케이톤스빌에서 시작해서 엘리콧시티의 40번 도로 중앙통에는 한인들이 세운 코리아타운 기념비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과 빵집을 알리는 한글 간판이 즐비하다. 셀프서비스의 간편한 식당은 물론 고급 레스토랑도, 군침이 도는 여러 빵집도, 내놓으라는 듯 부지런한 동포들이 영업을 하고 있는 유명한 거리이기도 하다.
어느 햇살 좋은 주말 오후, 부부 초청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번잡한 한아름 마트 옆 B.S.T. 건물 안 식당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평소와는 달리 만물상 같이 물건들로 빼곡히 들어찬 가게 안을 둘러보는데, 식당 주인이 ‘B.S.T.’란 이름은 북경, 서울, 동경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이라 귀띔해 준다. 연신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식사하는 광경을 보면서 경기가 좋으냐고 물으니 자린고비 같은 건물주 때문에 장사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식사 후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헤어지기 섭섭해 찾는 곳은 따끈한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는 베이커리이다.
여러 곳의 빵집 중에서도 노년과 청년이 선호하는 곳은 따로 있다. 빵과 커피의 맛이야 그게 그것이지만 가게 분위기 상 우리들이 자주 들리는 곳은 B.A.라는 소박하고 안온한 마치 한국의 다방을 연상케 하는 빵집이다.
조용한 음악과 실내 분위기 탓인지, 이곳에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면 미국생활 속에서 때때로 느끼게 되는 외로움도 잊게 되고 ‘실없는’ 정담 속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때로 뜻밖의 얼굴을 만나게 되면 파안대소, 손잡고 인사를 나누는 이곳이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커피 잔을 마주하고 앉아 두고 온 고향의 향수를 새삼 느끼기도 한다.
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베이커리 T.L.J.는 꼬마 손주들 생일 선물로 예쁜 장식품이 달린 초코케익을 살 때마다 자주 들리는 곳이다. 이곳은 넓은 주차장과 실내가 밝고 현대식 인테리어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지 한인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그다지 달지 않은 한국식 빵 맛에 길들여진 듯 주말이면 문지방이 닳도록 고객들의 왕래가 잦다.
무엇보다 아르바이트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종업원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이 실내 분위기를 한층 신선하고 활기에 넘치게 해 주는 것이 이 가게의 특징이라고 할까. 주말이면 예배나 미사를 마친 후 삼삼오오 이곳에 모여 그간의 소식을 전하는 한인 유학생들과 아이들의 손을 잡고 빵을 고르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종종 눈에 뜨인다.
요즈음 고층 건물이 없는 한적한 하워드 카운티의 이 전원도시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입 소문을 타고 한인은 물론 타 인종까지도 밀려들어와, 불어나는 인구만큼이나 상가 수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처럼 수많은 차량들이 오가는 40번 도로 선상에 줄지어 번창하고 있는 많은 상가들은 이 지역의 한인 이민사를 대변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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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 우드스톡, MD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