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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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낯설기만 한 문화, 팁

2023-03-14 (화) 이규성/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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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해서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껏 내게 묻는 말은 “미국 가서 사니까 좋으냐?”라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물질적인 것만 따지면 미국이 좋고 정서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좋다”고 대답하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한국에 오면 팁 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말하면서 “식당 가는 것도 맘 편해서 좋고…”

여러 해째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렇다고 모르쇠로 나 몰라라 하기도 어려운 것이 이 나라의 팁(Tip) 문화다. 시장엘 가서 카트에 물건을 싣고 나오면 청하지도 않았는데 뒤 따라오면서 카트를 대신 밀어주기도 하고 실린 물건을 차 트렁크에 실어주는 등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
이럴 경우, 어떤 행태로든 고마움을 표시는 해야겠는데 말로만 해도 되는지 아니면 돈으로 해야 하는지, 돈으로 한다면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아주 복잡해진다.

며칠 전, 모임이 끝난 후에 음식값을 내려고 계산대 앞으로 갔더니 근무자가 계산서를 내주면서 “팁은 아래 적혀 있는 금액대로 주시면 된다”는 말을 듣고 계산서 아랫부분을 보니 음식값 총액과 세금 액수가 적혀 있고, “팁”이라고 쓴 빈칸에 15%, 18%, 20% 그리고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산해 놓은 것이 보였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 아니어서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팁은 4가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서 주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이젠 팁까지 퍼센트를 따져가며 적어주는구나 하며 잠시 머뭇거렸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아 그렇군요” 하고 바로 계산해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던 경험이 있었다. 지금까지 팁은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 합당한 수준에 맞게 알아서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내게는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없어 서 무척 당황스러웠었다.

이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혹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마침 어느 분이 ‘고민 상담’ 주제로 팁에 관한 질문을 한 것이 있었다. 그분은 음식점에서 계산을 끝내고 나왔는데 종업원이 뒤쫓아 와서 팁이 “15%가 안 되는데요, 최소한 15%는 주셔야 하거든요”라고 하기에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15%에 맞춰서 더 주고 왔다면서 불편했던 순간을 이야기하고는 “팁을 안 주면 법에 어긋나는 것인가”하고 상담자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상담자는 “팁은 말 그대로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여서 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는 일은 없으나, 보통은 15% 전후로 주는데 언제부터인가 당연히 주어야 하고, 받아야 하는 돈이 되었다고 답한 것을 읽었다.
서비스의 질과 만족도를 나타내는 팁은 고객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과 팁의 규모는 서비스의 질 뿐만 아니라 고객이 자신의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여서 객관적인 기준은 없지만 대체로 고객이 팁을 많이 주는 것은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업원들에게는 보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팁은 주고받는 사람 간의 상호존중과 신뢰를 증진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며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서로 간의 만족도를 증진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한국과 미국은 각각 고유한 문화와 가치관을 따르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두 나라에서의 삶의 방식과 경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차이점은 인간관계나 예절 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는 데 그중의 하나가 팁 문화다. 미국에서는 일상적인 문화 중의 하나로 일종의 예절이며 팁 문화가 일상적으로 수행되는 곳에서 서비스받을 때 자신이 받는 대우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팁을 주는 것이 적절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할로윈 파티가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니듯이 팁 역시 한국의 것은 아니지만 이 땅에 살다 보니 이 나라 문화에 적응해 가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팁 문화에 접하게 되었고 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내게는 아직도 이 문화가 낮설고, 적응하기가 힘들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랴….“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하는데….

<이규성/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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