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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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채우기

2023-03-05 (일)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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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떤 것도 슬퍼하지 마라! 네가 잃은 것은 어떤 것이든 다른 형태로 너에게 돌아올 것이라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마음이 저민다. 얼마전 장례식에 다녀왔다. 나보다 훨씬 어른인 줄 알았는데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았다.

건강하고 활기차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지난 번 만날 땐 “베로니카 글이 요즘은 싱거워진 것 같아! 어느 한군데는 톡쏘는 맛이 있어 좋았다”며 칭찬과 충고도 해주었는데 코로나 완치 후에도 후유증으로 힘들어 하시더니 황망하게 떠나셨다. 이제는 미국에서 인연을 맺고 우리와 정을 나누고 가까이 따르던 이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눈물지으며 돌아오는 때마다 마음이 가라앉으며 별별 걱정을 다한다. 그동안 아끼며 열심히 모은 여러 채의 집과 고급 자동차와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은 다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나오는 건 순서가 있지만 가는 건 순서가 없다는데 언제 어느 때 나도 떠나면 어떻게 기억될지도 모르면서 내가 없어도 모든 건 잘 굴러갈 텐데도 우리집 살림은 누가 치울까하는 쓸 때 없는 걱정을 한다.


나 또한 코로나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인생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아득해져가는 나를 응급실에 데려가려는 남편에게 병원에 와도 빈자리가 없어 복도에 세워놓는다며 가족이 있는 곳에서 타이레놀과 물을 먹고 견디라며 화이팅을 전해왔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키며 살아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 아주 많다.

가장 감사할 일은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얼떨결에 세례를 받은 남편과 함께 성당을 가게 되었고 둘 중에 하나만 남아서도 계속 될 것이다. 다만 우리의 큰 잘못은 고백성사를 할 때면 남편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졌다고 기도할 때마다 내 탓이라고 가슴까지 치면서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알지 못하는 죄도 용서해달라는게 이해가 안 된다는 내 짝에게,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에는 그럴 수도 있다며 나만 고백성사 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부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어찌되었건 성당에 나오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

예전에 어른들에게 바람이 뭐냐고 물으면 언제나 나와 자식들의 건강이라면 겨우 그거야 했는데 지금은 나도 매일의 기도가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늙어간다.

또한 친구들이 나를 위해 한국에서 와서 5주 동안 원 없이 함께 지낸 것도 감사한 일이다. 모든 이의 염려로 양쪽 무릎 수술도 잘 되었고, 재활치료도 징징거리며 하고 있고, 수영장은 비타민 약이라며 다녔더니 튼튼해진 다리로 성당 점심봉사도 할 수 있었고, 올해는 먼 곳으로의 여행도 하려고하니 이 또한 감사하다. 이 모든 것엔 모든 이의 사랑과 도움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복이라 하고 내가 잘해서 받았다고 잘난 체를 한다.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돌아오면, 더 이상 마음이 설레지 않으면 정리하라는 원칙에 따라 누구에겐가 잘 쓰이길 바라면서 아이구 못산다 못살아를 되풀이하며 옷과 가방 신발을 담는다.

알러지 때문에 입지 못하는 망사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는 몇 개씩 있고, 남편이 들어주면서 민망해하는 커다란 빨강 가방, 언젠간 꼭 신을거라던 발이 퉁퉁 부어 들어가지도 못하는 납작하게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 온갖 유치 뽕사한 니트 스웨터, 뜬금없는 민소매 티셔츠, 운동을 결심하게 만든 쫄쫄이 레깅스, 캐릭터 양말도 재활용 박스에 담으며, 이젠 정말 끝이야 앞으론 절대로 아니야를 결심하지만, 그 다음날 어디에선가 봄날과 어울리는 하늘하늘하고 야시시한 리본 블라우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맹꽁이를 거울에서 마주치고 어쩔 거냐며 깜짝 놀랐다.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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