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영감 처음타는 기차놀이라
차표 파는 아가씨와 싱갱이하네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깎아달라 졸라대니 원 이런 질색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어려서 자주 듣던 서영춘의 ‘서울구경’. 양훈 양석천 콤비가 불렀던 기억도 나기에 찾아보니 원제는 ‘유쾌한 시골 영감’이다. 1936년 콜롬비아 레코드에서 강홍식의 노래로 발표된 곡이라고 한다. 노랫말은 당대 작사가 유도순이라는 분의 필명으로 추정되는 범오 작사로 나와 있으되 작곡자가 없고 “제목 앞에 째즈송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외국 곡을 빌려다 가사만 붙인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음, 외국곡이라? 외국이면 미국? 일본? 불란서? 그렇게 성의 없이 얼버무리면 안 되지. 할 일 없는 나의 탐구심을 자극한 거지. 그런데 단서가 너무 빈약하다. 칸추리 올드맨? 트레인 플레이? 에고 힘들어라. 예서 말까. 고지가 바로 저긴데 그럴 순 없지.
그래서 어찌어찌하여 찾아낸 원곡이 조지 워싱턴 존슨의 ‘The Laughing Song’이다. 알고 보니 웃음 한번 크게 웃자고 하고 지나가기에는 꽤 의미 있는 노래라는 것이다.
1891년에 나온 이 노래는 초기 음반산업을 대표하는 곡이다. 흑인이 불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해방노예들이 주인 성을 따른 경향 때문에 흔한 영국식 성을 가진 흑인이 많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 양반이 바로 이곳 버지니아 주의 라우든 카운티 출신이라는 사실! 남북전쟁 이전인 1846년 농장노예로 태어난 존슨은 주인집 아들의 놀이동무 겸 몸종이 되어 읽고 쓰기를 따라 배울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해방된 뒤 대처인 뉴욕에 가서 장기인 휘파람으로 거리 연주자가 되었는데 때마침 태동한 음반업계에 발탁된 것이다.
휘파람을 살린 ‘휘슬링 쿤(The Whistling Coon)’, 그리고 ‘래핑 송’.
연이어 대박이 터졌다. 그래서 가수로 ‘돈방석에 올랐다’는 건 아니고, 초기 음반은 깔때기에 대고 부른 소리를 밀랍 원통에 한번에 한통씩 담는 형태였으니 노래노동자에 더 가깝다고 봐야겠다. 2분짜리 한번 녹음에 20전, 워낙 인기가 좋아 2만5천~5만 통 정도 팔려나갔다니 엄청 부르고 또 당시 흑인으로선 꽤 큰 돈은 만졌을 것이다.
그러나 신기술이란 게 또 요물이다. 인터넷 초기 시장을 주름잡았던 AOL이 지금 뭐하나 그 존재를 찾기 힘든 것처럼 음반도 마스터 하나로 대량 복사제작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목힘 좋아 제작자들에게 귀히 쓰였던 존슨의 몸값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지인의 도움을 받아 문지기 도어맨으로 살아가던 존슨은 1914년 67세로 사망한다. 사인은 폐렴인데 린치를 당해 맞아죽었다, 누굴 죽이고는 잡혀서 목이 달렸다는 괴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동거녀가 둘씩이나 의문의 죽음을 당해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두번 모두 무죄로 나왔지만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눈은 의혹을 끝내 버리지 않았나 보다. 마치 백년 뒤의 OJ 심슨처럼.
노래 가사는 굳이 소개하지 않았다. 두 곡 모두 흑인을 우습게 표현한 민스트럴 계열이다. 이봉원이 시커먼스 흑인분장을 하고 멍청한 짓 흉내내던, 그 뿌리가 유랑 악극단이다. 19세기 내내 미국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형태이고 그중에 포스터처럼 우리가 많이 듣던 미국노래들이 있는데 지금은 정치적 올바름(PC)에 걸려 정작 미국에서는 좀체 듣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