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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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러운 아기 나무

2023-01-30 (월) 홍희경 / 전 연세대 미주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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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6시면 잠에서 깨어 강아지와 집 주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직 해가 안뜨고 적막강산이라 숲에는 들어가지 않고 길 따라 한 30분 걷는다. 그리고 맨손 체조와 요가를 하면 머리가 산뜻해진다.
서서히 떠오르는 해의 기운으로 어두운 장막이 점차 사라지고 강아지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퉁이에 문득 언덕 위에 걸쳐진 큰 나무를 보았다.
그런데 이 잘라진 큰 나무를, 길거리 도로로 가는 길목을 막아선 가녀린 어린 두 나무가 받쳐주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어린 나무가 얼마나 불쌍하던지 큰 나무를 옮기려고 밀어보니 내 힘으로 안 된다.
만약 이 어린나무가 받쳐주지 않았으면 도로에 떨어져 교통에 지장을 주었으리라. 앞으로 얼마나 버틸지 모르지만 그 무거운 통나무를 사시사철 떠받치고 있는 게 애처롭게 보인다.
나무들을 보면 참 생명이 질기나 보다. 산등성이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비바람과 폭우 속에 버티지 못하고 산등성이 아래로 쓰러져야 정상인데 뿌리의 깊은 힘으로 산 위로 엎어진 것을 곧잘 보곤한다. 때로는 돌산 위에 자라는 소나무는 더욱 애처롭다. 아무도 길쌈도 안하고 비료도 안주고 물도 안 주지만 바위 속으로 뿌리를 내려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나무가 우리 생들에게 얼마나 소중하면 오염이 물든 공기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공급해준다. 내가 어렸을 때 남산을 보면 근처 주민들이 겨울의 땔감으로 마구 베어가 민둥산이 되었는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나무를 베어가는 사람은 중벌에 처한다 하여 남산이 변하게 되었다.
작년에 서울을 방문하여 남산을 보니 나무가 무성히 자라는 걸 보면 위정자들의 치산 치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다.
일전에 금강산을 방문하면서 북녘 땅으로 들어가니 거의 민둥산이었다. 북녘의 동포들이 겨울에 석유나 가스가 부족하여 산의 나무를 마구 베어가 땔감으로 쓰고 있다는 현대아산재단 가이드의 설명이다.
나에게는 두 명의 손주가 있다. 큰 손주는 벌써 8살로 제법 소년티가 나서 의젓하다. 둘째 손주는 2살 막 넘었는데 기어 다니다 이제 막 뛰어 다니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지난번 크리스마스 할아버지 집에 와서 말을 조잘조잘 하면서 재롱을 떠는데 이 갸날픈 손주들이 부모의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면 나무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같아 보인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엎드려 기도 하기를 이 두 손주들이 나무처럼 건강히 자라서 사회에 이바지 하는 인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홍희경 / 전 연세대 미주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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