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게 덕행을 베풀면 보답이 오게된다’라는 뜻으로 전한(前漢)시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편집한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莊王)의 명재상이었던 손숙오(孫叔敖)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밖에 나가서 놀다가 집에 돌아온 그가 근심에 가득 차서 밥을 먹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얘야, 왜 밥을 먹지 않는 것이냐?’라고 묻자 어린 손숙오는 ‘제가 오늘 머리가 둘 달린 뱀(兩頭蛇/양두사)을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머니가 다시 ‘그 뱀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손숙오는 ‘저는 양두사를 본 사람은 죽는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뱀을 또 볼까봐 제가 죽여서 땅에 묻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며 ‘걱정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야. 내가 듣건대 음덕이 있는자(有陰德者/유음덕자)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준다(天報以福/천보이복)라 했다’고 말했다. 훌륭한 어머니에 훌륭한 자식이 나지 않을 수 없으니 과연 손숙오는 그후 초나라의 영윤(令尹, 재상)이 되어 초나라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그의 치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순리열전(循吏列傳)에 나와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다스리지 않았는데도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믿었다하니 그의 인품을 알만하다.
2022년 12월 어느 날, 한국 부산 사상구에 있는 행정복지센터에 익명의 기부자가 1,000만원 어치의 라면 550박스를 트럭에 가득 실어 보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기부자는 ‘추운 겨울을 힘들게 보내는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만일 자신의 신원이 외부에 밝혀지면 기부 물품을 도로 회수할 것이라는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해마다 익명으로 2017년부터 연말이나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날 때 수백, 수천만원씩 총 5억이 넘는 돈을 경남사회복지단체에 보냈었다는 어떤 기부자는 2022년 성탄절을 앞두고 약 4,750만원의 현금을 신문지에 싸서 놓고 가면서 중증질환을 겪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의 병원비로 써달라고 또다시 익명으로 기탁했다고 한다.
많이 차지하고 남에겐 조금밖에 주지 않는 욕심많고 인색한 사람, 즉 풍취각여지인(豊取刻與之人)과 ‘곗돈을 거둬 술을 사면서 마치 자기가 사는 것처럼 생색을 낸다’는 뜻의 계주생면(契酒生面)을 버젓이 하는 사람이 많은 세태 속에서 이름을 내기 위해서도 아니고,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며 음덕을 베푸는 그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들이다.
이밖에도 연말이 되면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위해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다. 그런 이들 중에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치 않은 평범한 사람인 경우가 많아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생각이 꽉 차있는 세속의 부자가 마음의 부자가 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 떠오른다.
사마천의 사기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군자는 가난한 사람만 돕는다(君子周急不繼富/ 군자주급불계부)’라는 공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어린 손숙오의 고사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덕행을 베푸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언젠가 복을 준다는 음덕양보(陰德陽報)가 꼭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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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