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겨 쓰는 말 중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가랑비는 미세한 빗방울이어서 조금씩 젖어 들기 때문에 옷이 웬만큼 젖어도 이를 깨닫지 못한다는 뜻인데, 어떤 일이 처음에는 사소한 것처럼 여겨져서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이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얼마 전 한국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방문한 길이어서 친척 어르신과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려면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만 하는데 우리 같은 ‘지공 선생(地空先生)’에게는 공짜 표가 제공되는 전철이 안성맞춤이어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했다. 그런데 한국 전철의 의자는 미국 메트로의 의자 배치와는 다르게 양쪽 창가에 길게 설치되어 있어서 자리에 앉기만 하면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마주 보게 되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전철 안에는 내가 특별히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밖의 풍경을 보는 것도 잠시인지라 눈을 감고 있거나 아니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놀라운 풍경을 보게 된다.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얌전하게 앉아서 휴대 전화 화면만 응시하고 있는 탓에 전철 안은 그야말로 적막공산(寂寞空山)처럼 조용했다.
가끔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혼자 앉아서 전화를 걸고 있거나 받는 사람의 소리였다. 혹시 책을 보는 학생이라도 있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없고 그저 열심히 손가락을 놀리고 있는 모습이 어딘가로 문자(Text message)를 보내는 중인 것 같은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중에 경로석 승객 외에는 전화기만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뿐이었다.
어려서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왔던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은 이제 사라진 것 같고 “휴대전화에 길이 있다”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바야흐로 휴대전화 전성시대가 왔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전화 화면만 들여다 보고 있는 젊은이들과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덜레스 공항에 내려서 내가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휴대 전화였다. 한국에서는 별 쓸모가 없어서 가방 속에 넣어 두기만 했던 전화기였다.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에게 도착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문득 한국에서 군 동기생들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그 친구들에게도 도착 소식을 전해 주고 싶었고, 그들이 개설했다는 카톡방이 궁금하기도 해서였다.
그 후로 가끔 동기생 카톡방엘 들어가 보면 그동안 소식도 모르고 지냈던 낯익은 이름들이 보였고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나 그림들을 읽고 보기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휴대 전화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는 내 모습에 “나도 별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개인적으로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전화기의 편리성은 모르는 바가 아니나 휴대전화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 전화가 대중화되면서부터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은 가정에서 식구들 간의 대화가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식구마다 전화기 한 대씩 갖고 있어서 식탁에 앉아서도 전화기 화면만을 들여다보며 밥을 먹고는 슬그머니 제 방으 로 올라가 버리기 때문에 가족 간에 이야기할 틈도 없거니와 다른 식구들과 눈을 맞추어 가면서 하던 눈인사마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밥상 앞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가며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보냈던 예전과는 달리 식탁에서까지 전화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식구들의 모습이 바로 휴대전화로 인해서 만들어진 새로 운 가정문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의 상황이 이런데도 휴대전화기의 편리성에 익숙해지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손에 전화기가 쥐어져 있질 않으면 공연히 불안해지기도 하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전화나 메시지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주머니 속의 전화기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나도 어느새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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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수필가,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