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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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의 그리움, 희망의 속삭임

2022-12-19 (월) 유설자 /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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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언제나 아쉬움을 모른 채 담담히 흐르고 있다. 아이들을 돌볼라 직장에 다닐라 이민 초기의 삶은 너무나 힘겨웠다. 아이들이 한창 어릴 적이다. 얼른 자라서 제 갈 길을 모두 갔으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니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다. 젊음도 있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 모두 내 곁에 있었으니까. 이젠 자식들이 모두 떠난 빈 둥지에 덩그러니 노년의 부부만 남아있으니 지나쳐 간 그 세월의 그리움이 있다.
그러나 고생한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며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을 덧없는 세월에 마음까지는 따라가지 말아야겠다. 나이는 시간의 매듭일 뿐, 생각이 어리면 늙지 않을 것이며 열정을 가지고 풍요롭게는 못산다고 하더라도 자유와 평화속에서 안식을 누리며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함을 느껴본다.

탈무드 격언에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세 가지가 있는데 명곡(名曲), 조용한 풍경, 깨끗한 향기라고 했다. 때로 허전한 마음 속에 고독이 마냥 눌러앉을 때, 병풍처럼 싱그러운 녹색으로 펼쳐진 뒤뜰 덱에 나가 앉아 향 좋은 커피를 마시며 때로는 성가를 때로는 가요로 때로는 팝송을 소리 내어 부르곤 한다.
‘행복해서 노래하는 게 아니고 노래하니까 행복해진다’ 라는 말이 있듯이 신나게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에 있어서 노래가 없다면 우린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었을까. 힘이 되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악이요, 노래는 뭔지 모르게 큰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젊음을 주고 기쁨, 희망, 사랑 등 없는게 없을 정도로 노래를 부를 때면 행복함 속에서 인생이 즐겁다.

또한 노래는 우리의 인생과 같이 살아왔다. 슬플 때도 흥겨울 때도 어김없이 노래는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고된 삶에는 힘이 되었고 잔치할 때는 더욱 더 흥을 돋구어왔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음악 교육 연구소의 한스 퀸터 바스티안 교수팀은 노래 부르기는 면역체계만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른 사람의 기분도 상당히 개선시켜 주는 것으로 추론했다.


그 옛날 학창 시절에 즐겨 듣고 불렀던 ‘희망의 속삭임’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의 18번 애창곡이 되었다.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이 노래는 미국의 셉티머스 워너(Septimus Winner, 필명 Alice Hawthorne)가 1868년 발표한 곡으로 1960년대에 대학가를 휩쓸었고 연말이 되면 거리에 흘러나오는 짐 리브스(Jim Reeves)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를 두드리네/부드럽게 속삭이는 앞날의 그 언약을/어두운 밤 지나가고 폭풍우 개이면은/ 동녘엔 광명의 햇빛 눈부시게 비치네/ 저녁놀 서산에 재운 황혼이 찾아와도/청천에 빛나는 뭇별이 희망에 찬 아침 햇빛 창문을 열어주리/속삭이는 앞날의 보금자리/즐거움이 눈앞에 어린다’

얼마나 멋지고 희망이 마구 샘솟게 하는 가사, 희망의 속삭임인가.
정확히 1972년 12월 8일, 고국을 떠나 이곳 미국에 정착,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다섯 번이나 강산이 변한 이민의 삶 속에서 인생의 반세기 50주년을 맞았으니 정말 감회가 크다. 만 50년의 이민의 삶 속엔 인내심으로 어려운 고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나의 분신같은 희망의 속삭임이 아니었던가. 가사 하나 하나 힘주어 부를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장점으로 남는다.

‘희망의 속삭임’ 이 노래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부를 때나, 감상할 때마다 마구 희망이 솟구치는 멜로디와 가사임이 분명하다. 오늘 이민 나의 50주년 기념일을 맞으며 언제나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준 희망의 속삭임을 마음껏 소리내어 부르고 또 불러본다.

<유설자 /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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