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넘기다 보니 올해 마지막 12월이 소위 말하는 ‘어느새’ 성큼 내 곁에 다가와 있다. 살다보면 무슨 일들의 끊임없는 연속들의 일상사가 되어버렸기에 12월이 불쑥 다가왔다고 놀랄 일은 아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정신 차려 지나간 일들을 회고, 점검해보며 앞으로의 할 일들을 예상, 준비해보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봄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들은 종종, 인생 무상함을 느끼며 어느 땐 시간이 왜 이리도 느리게, 또 어느 땐 화살 나는 것같기도 할까? 시간은 단지 같은 시간일 텐데.
이러한 시간 그리고 공간에 대한 생각과 관찰을 옛 철학자(데카르트, 칸트 등), 과학 특히 이론 물리학, 수학자(라이프치히, 뉴턴, 아인슈타인, 호킹)들은 각자의 소신으로 발표했는데 그중 여기서 소개할 분은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이다.
대표작인 ‘순수이성 비판서 1, 2권(대우 고전총서 019 (백종현 교수 옮김)을 2006년 고국 방문시 세종로 교보문고에서 산 후 옛 스승이신 조홍식 교장 선생님의 “참 난해한 책인데, 이 책으로의 도전정신이 참 보기 좋네, 한번 해보게!” 하신 격려 말씀이 잊히질 않는다.
7전8기라 할까. 우여곡절 끝에 5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틈틈이 컴퓨터에 정리, 입력을 하며 2011년 완독했다.
시간과 공간이란 한마디로 감히 정리한다면,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 없이(선험적) 주관적 상상력에 의해 즉 다시 말해 대상인식에서 감각을 통해 의식에 주어지는 잡다한 현상의 재료들을 끝이 없는 무한대의 선상이나 공간에 한 조각, 한 조각 서로 곁하여(병렬적), 혹은 서로 잇따라(계기적)의 방식으로 정리해놓은 하나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저기’,‘거기’라든가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공간과 시간적인 것 같은 의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대 안에서의 공간과 선상의 한 조각 혹은 한 점에 불과하다.
칸트 이전엔 ‘인식’이란 우리가 일상 쓰는 말 그대로 즉, 그냥 눈에 보이는 외부물건을 인식하는 것이었으나 칸트 이후에 인식은 인간의 주관적 영역으로 옮겨와 인식대상은 인간의 주관에 던져진 것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에선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붉은 조화’(Harmony in Red 1908)가 대상을 자기 머리에서 자신만의 상상으로 구성한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아인슈타인은 시간, 공간을 하나로 규정, 학문적 상상력을 통해 외부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의식 속에 있을 뿐이라고 했다.“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쉽다”라는 성경말씀도 공간개념의 초월적인 우리의 상상세계, 즉 낙타를 한없이 작게 만들어놓고 바늘구멍은 한없이 크게 만들어 놓는 상상세계에선 능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성경 구절의 본래 의미는 부자들에게 선행 강조의 경구이나.
다시 부연하면 시간과 공간이란 선험적 상상력의 산물이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니, 병역 의무기간 3년(?)을 거의 마치고 제대 한달을 둔 젊은 병사의 마지막 달력의 하루하루를 제껴가는 날들은 일각이 여삼추(직역하면 15分이 3年처럼 느껴진다)일 것이다.
얼마 전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 진출을 확정짓는 포르투갈 전 승리 후 우루과이와 가나 전의 경기결과가 나오는 그 짧은 기간이 그토록 길게 느껴졌다는 한 축구선수의 말도 생각난다.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을 때의 모든 이들의 공통적 생각이다.
기차를 타고 달릴 때 자신은 그대로 서 있는데 마치 산천경계가 움직이며 빨리 지나가는 듯한 경우가 12월말에 빚이나 사글세, 세금을 내야 하는 빚쟁이, 셋방살이하는 사람, 사업이 안 되어 자금 숨통이 막힌 사업가들에겐 왜 그리도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매정하게 빨리 지나가는 지, 그렇기에 원수처럼 지불해야만 할 날들이 자주 닥쳐오는지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줄로 생각된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니 하며 우리들이 살아가며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할 필요가 더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매일 매일, 한순간, 한순간을 최선을 다해 자신은 물론 타인, 특히 약자들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해 봄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훨씬 유익하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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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