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에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의 저먼타운에서 살았다. 지금이야 더 지나 클락스버그까지도 한국분들이 살지만 그때만 해도 저먼타운은 워싱턴 한인 거주지의 북방한계선 격이었다. 버지니아 맥클린에 있는 교회에서도 우리가 북으로 가장 멀리 살았다.
행사 취재가 늦어지면 집에는 언제 가나 걱정이었다. 그런 투정을 하노라면 YMCA의 정준영 총무님이 씩 웃으며 농을 던지곤 하셨다. “그러게 왜 가까운 타운에 살지 왜 ‘저 먼~’ 타운에 사누.”
저먼타운이라는 이름은 1830년대에 이곳에 독일계 이민자의 가게가 들어서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대부분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이었고.
한인타운에서 멀어서 불편했지만 좋은 것들도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랭카스터의 더치 컨트리에서 내려오는 아미쉬 장이 서고, 270번-15번 도로로 올라가면 커닝햄 계곡, 게티스버그를 가볍게 다녀올 수 있어 주말 나들이 나서기에 좋았다. 그 중에 하나가 슈가로프 마운틴(Sugarloaf Mountain)이었다.
몽고메리 카운티와 프레드릭 카운티가 만나는 접경에 봉긋 솟은 산. 주변 기준 8백 피트(244미터)로 높지 않아 나같이 굼뜬 이도 쉽게 받아주되 오르면 나름 그 일대의 정상이라 확 트인 시야가 시원한 산이다.
남북전쟁 당시 포토맥 강 상류를 건너 메릴랜드로 치고 들어가 워싱턴의 배후를 친다는, 남군의 과감한 진군 행렬을 확인한 것도 슈가로프 정상에 진을 친 관측대였다. 주변의 평야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캐톡틴 마운틴의 캠프 데이비드로 낙착이 되기는 했지만 루즈벨트 당시 대통령 별장 후보에 첫 순위에 오를 만큼 경관이 좋다.
듣기에 베데스다의 국립보건원(NIH)에 다니는 올드 타이머 의사 선생님들이 즐겨 찾는 산행코스라고 했다. 사과나 피넛버터 샌드위치 정도 가볍게 준비해서 힘들지 않게 담소하며 즐길 수 있는 친교의 장이었다.
내셔널 내추럴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있고 일반인의 이용이 자유롭지만 슈가로프는 사유지이다. 자발적인 기부금은 환영. 20세기 초 고든 스트롱이라는 시카고의 사업가가 이 산과 주변 일대를 사들였는데 신탁기금을 만들어 재단에서 소유는 하되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달달하니 유달산도 아닌데 여기에 왜 설탕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슈가로프라는 이름은 모양에서 나왔다. 설탕덩어리라는 뜻의 슈가로프는 과립형 가루설탕, 각설탕이 등장하기 이전의 제품 형태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검은 원당을 끓이고 걸르기를 거듭한 뒤 꼬깔 모양의 틀을 거쳐 나온 설탕덩어리를 말한다. 19세기까지 포탄, 보온병 모양의 이런 형태로 설탕이 만들어져 팔렸다.
조지 워싱턴의 저택 마운트 버논에 구경 갔다가 첫 코스인 녹색의 뉴룸에 재현된 식탁에서 슈가로프를 봤다. 접시 위에 뾰족한 설탕덩어리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애완동물 발톱깎기 형태의 설탕깎기(sugar nip)가 놓여 있었다. 그제서야 슈가로프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찾아 보면 메릴랜드의 슈가로프보다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의 슈가로프가 더 이름에 걸맞기는 하다.
오랫동안 메릴랜드 주민의 사랑을 받아온 슈가로프 마운틴이 요즘 시련을 겪고 있나 보다. 프레드릭 카운티와의 조닝 시비가 그것이다. 서로 물러서지 않는 치킨게임이 격해지면서 일반인 공개의 전통을 취소할지도 몰라 걱정이다.
그렇잖아도 여기에서 이름을 따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공예품 장터로 사랑받아 왔던 슈가로프 크래프트 페스티벌이 2020년 팬데믹을 못 버티고 45년만에 사라진 터라 더욱 아쉬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