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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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애나의 사랑

2022-12-05 (월) 이재순 /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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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는 어머니 양로원에 살고 있는 중년 여인이다. 어머니가 그 양로원에 입주하셨을 때 그녀는 이미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어머니가 그곳을 떠나셨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정문을 향해 앉아 있었다. 마치 누구라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내가 애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간신히 한손으로 책을 쥐고있었다.그녀의 얼굴 또한 한쪽은 근육이 굳어 있었다. 한쪽 다리도 굳어 있었다. 간신히 한발로 휠체어를 끄는지 미는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노인들만 보이는 그 복도에서 중년 여인이 휠체어에 앉아 씨름 하는 모양은 보기에 안타까웠다.

어느날 얼핏 훔쳐 본 그녀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아니 얼굴에 환한 핏기가 도는 것 같았다. 웬일일까. 건강 상태가 좋아 지는 모양이다. 너무 반가웠다. 그녀가 빨리 회복하여 양로원을 나갔으면 하고 바랬다. 도서관학을 전공한 그녀는 도서관에서 일했다고 직원이 들려 주었다.

그날도 내가 걸어가고 있는 반대편에서 그녀가 휠체어를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얼굴은 너무나도 밝았다. 반 쪽으로 삐뚤어진 입가에는 웃음으로 활짝 열리다 침을 주르르 흘리고 있었다. 나도 어색하지만 웃음으로 대꾸했다. 거리가 가까워 오자 그녀의 반가운 웃음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를 돌아 보니 내 뒤로 또 하나의 휠체어가 힘들게 서서히 그녀를 향해 오고 있었다. 역시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휠체어를 끌고 오고 있었다. 곱게 늙은 얼굴에 불편해 보이는 몸을 간신히 겨누는 할아버지 역시 이 양로원에 살고 계신 분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후로 나는 두 분을 눈여겨 보았다. 양로원에서는 항상 같은 네 사람이 앉아 식사한다. 언제부터인지 애나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몸이 너무 불편하여 방으로 음식을 갖다 드리는가 생각했다. 식당을 나오던 어느날 나는 애나가 식당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복도 건너편 작은 방에 두 사람이 앉아 식사를 한다. 애나와 그 할아버지.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씹으며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은 따스했다. 사랑이 오고 갔다. 무표정 했던 그녀의 얼굴에 왜 화기가 돌고 웃음꽃이 피었는지 나는 알았다. 사랑은 황무지에서도 꽃을 피우는구나.

그러던 어느날 애나는 책도 손에 들지 않고 머리를 숙인채 신음하고 있는 모습을 복도에서 보았다. 웬일일까. 병이 심해졌는가. 무엇이 애나를 다시 시들어 버린 파줄기처럼 만들었을까. 직원이 들려준 얘기로는 그 할아버지가 다른데로 가버리셨단다. 아들이 와서 다른 양로원으로 모신다고 데리고 갔단다. 왜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자식과 싸워 이기는 부모 보았나. 나이들면 자식들은 늙은 부모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기들끼리 결정해 버린다. 아니 어쩌면 이 늙은 나이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 할 용기가 있었을까.

그 아들은 아버지의 삶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가? 오줌 냄새로 찌든 방이 사랑의 힘으로 꽃향기처럼 변하고 있는 신비함을 그 아들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거처를 옮기면 효도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산다. 부모 자식 조차도.

<이재순 /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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