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이 나이에 새삼 자식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룬다. 하나 있는 아들이 제 식구들을 데리고 미국 이민을 열심히 생각하더니, 드디어 직장을 옮기면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딸까지 데리고 아예 떠났구나. 멀지 않아 줄줄이 한국에 남아있는 두 딸까지도 데려가면,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아들 식구와는 생이별이 될 판국이야.” 얼마 전 전화로 들려준 절친의 울적한 하소연이다. 올 한해도 예기치 못했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는 불의의 사고로 지구촌은 끊임없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저물어 간다.
어느 나라든 사회전반에 걸쳐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사회구성원들은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동요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수시로 반복되는 남북 갈등이 예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하는가 하면, 세계 경제가 널뛰듯 뛰는 현실에 발맞추어 한국 기업들도 인력부족 대비책으로나 또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빗장을 열어 세계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정부에서도 서둘러 재외동포청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인의 교육열이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이야기답게, 이제는 세대를 건너 뛰어 젊은 신세대 엄마들이 기회가 되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양상을 지켜본다. 얼마 전에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몇몇 한국 엄마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중 처음 보는 어떤 젊은 엄마가 곁으로 다가 와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서 이 동네로 온지 며칠 되지 않는데 이곳에는 오래 살았는지, 아이들 학교 정보랑 주변 동네 이야기도 듣고 싶다는 등 초면임에도 스스럼없이 대해 아마도 친정엄마 같은 편안함을 느낀 것 같아 보였다. 그 뒤 몇 번 만나 잠시 잠깐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주고받는 사이에 들은 이야기로는 어린아이들의 사교육비가 점점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고, 더불어 남편의 장래 발전을 위해 식구 모두가 미국행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최근 한국에서 온 젊은 청년 둘이 이사를 왔다. 아직은 눈인사조차 없었지만 바로 옆집이라 왠지 갑자기 찾아 온 손님처럼 반가움과 함께 신경이 쓰인다. 그뿐 아니라 한국 수퍼마켓이나 베이커리에 들를 때면 갓 유학 온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모여 환담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도 이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 이민 1세대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많은 숫자의 이민 2, 3세대의 청·장년들이 부쩍 정계 뿐 아니라 미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만큼 앞으로 이들이 미국 내 한국인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임을 이미 예고하는 듯하다. 어느 사이에 엘리콧시티의 중앙통인 40번 도로 선상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기와 조형물이 대로 양가에 나란히 세워져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가 하면, H마크가 선명한 차들이 활개를 치며 질주하고, 국산 가전제품과 스마트폰은 이미 미전역의 대형 매장마다 차고 넘치게 진열되어 있다.
지구촌은 점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들락거리며 살고 있는 이웃 마을 같이 변모하고 있다. 미국 속담 “세상은 너의 손아귀 안에 있는 진주조개 (The world is your oyster)”라는 야망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막연한 현실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보다 넓은 세계로 힘차게 뻗어가는 이즈음이다.
<
윤영순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