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상과 우등상
2022-11-22 (화)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이제는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전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은 웃음과 눈물이 뒤범벅되는 장소였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때는 숙연해지며 울음과 눈물이 식장을 꽉 메웠다. 우리들 모두는 일생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순서 중의 하나는 상장 수여 시간이었다.
선행상, 우등상, 곧이어 개근상, 정근상 등 각종 수상자들이 호명되며 여기저기 웅성거리며 흥분되고 이중 누가 우등생이며 수석인지 야단이었다. 그러나 개근상 수상자들에 대한 반응은 그리 큰 것 같질 않았던 것 같다. 그 졸업식을 한 지가 벌써 66년 전의 일이다.
엊그제 우리 동네 게이트하우스(Gatehouse) 수퍼바이저(Supervisor)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신들을 관리하는 회사가 변동되어 부득이 재임명을 요해 다시 응모해야함으로 추천이 필요해 필자를 추천인으로 하고 싶으니 허락과 함께 추천서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즉석에서, “그러마”하고 승낙했다.
필자가 현재 사는 동네로 이사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근면, 성실함을 여러 면에서 알 수 있었다. 첫째 현 직업을 가진 지 26년째니 나이 52살로 우리 애들 나이인데 보기에 벌써 성실해 보여, 사위라도 삼고 싶을 정도다.
4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 집무실인데 이곳에서 26년의 세월을 보냈다니 믿어지질 않는다. 꾀부리지 않고, 자신을 알며, 성실함 없이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닐까. 집에 무슨 손 볼일이 있어 부탁을 했더니 어김없이 잘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실비 수준의 청구서였다. 아, 이런 것들이 그를 26년간이나 한 직장에, 또 한 부서의 책임자가 될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살 집을 지을 때도 독일 출신으로 건축 일에 일생을 보냈으면서도 소시민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분, 너무 고지식하고, 성실하며, 자신의 일처럼 우리 집을 지으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저씨 같은 목수 분이 생각난다. 집이 완성된 후 십년이 지났어도 집에 사소한 문젯거리가 생겨도 내 일처럼 달려와 무료로 집 손질을 마다않고 해주시곤 했다.
아주 오래전 나의 직장에 취직하고자 하는 한 분의 이력서가 화려하기 그지없고 꽤 많은 분량이었다. 그런데 직장을 너무도 많이 옮겨 다닌 것 같아 좀 망설였더니 나의 의견을 묻던 보스가 그대로 응모자의 서류를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참 대조적이지 않는가. 스펙을 쌓는다, 자원봉사증을 얻으려 난리들을 치는 세상이지만 한편에선 빛나지 않지만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역군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자 80세 나이까지 살아오며 느낀 것 하나는 우등상도 필요하고 좋지만 그보다는 개근상을 탄 학생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 건강해 지는 것 같고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각 분야, 과학, 예술, 인문학 분야의 대가들도 일생을 묵묵히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온 개근상 수상자들임이 틀림이 없겠다. 개근상(皆勤賞)은 모든 상 중에 으뜸일지어다. 아니 그러한가?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