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하늘이 울긋불긋한 잎들 사이로 깊고 짙은 가을을 알린다. 바싹 말라 잔뜩 성이 난 꽃잎, 나무와 나뭇잎 어느 것 할 것 없이 그 실 같은 등을 보이며 축축 땅으로 곤두박질치려 한다. 아직 떨어지면 안 되는 걸 아는 고목도 말라버린 앙상한 잎들을 붙잡고 있기에는 힘에 부치나 보다.
붉은 꽃잎들이 차곡차곡 푸른 잎을 앞서더니 이제는 원래부터 붉은 나무였나 아니면 원래 진노랑 나무였나 싶게 붉음이 진하다 못해 검붉은 핏빛이다. 툭 꽃잎이 떨어지기 전, 늙고 빛바랜 진 붉은 고꾸라진 꽃잎들이 서글퍼 보이는 이유는 우리 인생의 내리막길과 오버랩되기 때문인가 보다.
며칠 전, 1년 전쯤 부군이 돌아가신, 연세가 칠십이 넘으신 분을 만났다. 그 분은 남편의 묘지에 있는 벤치 비석과 묘지 주변을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며 “남편이 그렇게 세상 떠나고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요? 남편이랑 머리 맞대고 사후에 우리가 어디에 묻히게 될지 그리고 비석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는지… 돌아가시고 난 뒤 급하게 묘지를 찾고 비석을 세우고 남편을 기리는 문구를 생각하다 보니 너무도 후회되더라고요. 지금은 젊어서 생각할 수 없겠지만 누구나 한 번은 가야 하는 길이니 미리 생각하고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미국의 묘지는 참으로 가깝다. 한국처럼 산기슭에 있거나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가 아닌 생활 가까이에서 흔하게 보는 묘지라서 사후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세상의 고리처럼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무서움보다는 사후의 안락한 안식처 같은 따뜻함이 엿보인다.
집 근처에도 사설 공동묘지가 있다. 눈이 오면 커다란 소나무가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축축 쳐져서 하얀 눈의 왕국이 따로 없고 어스름한 새벽길에는 나무도 덮일 정도의 안개가 자욱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아스라한 장면이 연출되곤 한다. 지금처럼 노란 단풍이 노란 천지를 만들면 신이 선사한 경외감이 들어 기어이 길 한쪽에 차를 대고 사진으로 남기고 마는 그런 곳이다.
갑작스러운 그분의 사후에 관한 후회는 엉뚱하게 내 고민의 시작을 알렸다. 아직은 사후를 대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출가할 때까지의 시간은 마치 신으로부터 보장받은 것 같은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 아이를 나에게 보낼 리 없다는 막연한 생각까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엉뚱하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나의 목숨에 관한 나잇값을 아이의 잣대로 산정해 버렸으니 신이 있다면 어이없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아이들의 측에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타국에서 언어나 인종의 다름으로 조그마한 상처에도 서로 보듬고 격려하고 응원하다 보니 그 어떠한 가족보다 끈끈한 가족애가 있다. 그런 가족에게 부모의 부재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을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반드시 한번은 죽는 것이고 사후의 슬픔은 뒤로 하고 반드시 3일 안에 치러야 할 장례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랬다. 마음으로 의지하고 싶을 때 부모가 곁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나 같은 마음이 들어 부모를 찾는데 내가 아이들 옆에 없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누구는 그런다. 묘지가 근처에 있으면 때가 되면 꼭 가야 하는 죄책감이 들 수도 있으니 되도록 사후에 존재의 잔재를 남기지 않는 게 남아있는 자식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덜 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묘지를 만드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 좋고 나쁨은 없다. 결정에 따른 과정의 다름이고 결과적으로 어떤 게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묘지를 사는 일은 아직 미결에 그치고 있지만, 오늘일지 내일일지 오십이 넘으니 지금 당장 죽는다 한들 그리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평소에도 크게 욕심내는 일이 없어 당장 한 줌의 가루가 된다 한들 세상에 미련은 남지 않지만 내 손길이 가야 하는 아이가 있어 그거 하나만은 걱정거리로 남을 거 같다.
묻힐 장소와 비석의 종류 그리고 지상에서의 삶을 한 줄로 남길 문구에 장례식 준비까지 미리 상의하며 준비해 놓으면 사후에 일어날 부산함은 줄어들 것이다.
남은 자의 슬픔과 애도만으로도 얼마나 당황스럽고 벅찰 일인가? 그것으로 만족하자. 눈 꽃송이 하나도 이미 지정된 자리를 알고 하늘에서부터 내린다는데 기껏 저만치 높은 꽃잎 하나 자기 자리를 모르고 떨어질까? 젊은 날엔 이해되지 않았던 아줌마들의 단풍여행을 이번 가을엔 나도 한번 가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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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 엘리콧시티,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