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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다녀오면서

2022-11-13 (일)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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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다녀왔다. 3년만이다. 그러니까 팬데믹 시작 후 처음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과거와 달리 좀 편하게 다녀왔다. 예전 가을의 고국 방문길은 거의 모두 미국인 교육자들과 함께 했는데 이 번에는 나 혼자였다. 미국인들을 위해 길 안내, 통역을 할 필요나 음식을 고르는데 조심할 이유도 없었다.

시간도 여유있게 다녀오기로 했다.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3주라는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일 중독자인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아무 일 없이 보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국방문 중 강연할 곳을 물색했다. 그래서 6개의 강연을 미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 주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몰아서 했다. 그것도 6곳의 다른 지역에서 말이다. 공주에서 시작해 대구, 창원, 진주, 여수를 거쳐 서울에 돌아와 마무리했다. 부담되는 스케줄이었지만 나 자신에게 도전으로 생각하고 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한 강연도 취소하지 않고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고국 방문 중 마음이 가장 아팠던 것은 역시 이태원 참사였다. 핼로윈 파티로 모인 인파로 인해 무려 150여 명이 압사를 당한 끔찍한 일이었다. 현장은 사건 바로 전날 내가 가 보기도 한 곳이었다. 이태원에서 옷 한 벌을 구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내려 준 곳이 해밀톤 호텔이었고 거기서부터 옷 가게까지 걸어 가는 길에 그 골목을 보았었다. 경사진 좁은 골목에 몰려든 인파가 양쪽 방향으로 서로를 밀면서 압사를 초래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나라에서 말이다.


참사 당일 오후에 나는 바로 전 날 강연을 했던 학교의 한 책임자와 인사동에서 만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담소 후 내가 다음 약속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다고 하자 그 책임자가 나를 인근의 내가 가 보지 않은 곳을 소개했다. 익선동 한옥거리였다. 과거에 사람이 거주했던 한옥들이 다양한 식당과 상점으로 변해 있었다. 많은 식당들에 손님들이 차고 넘치는 활기찬 모습을 보았다. 좁은 길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안내를 받으면서 나에게 찾아온 생각은 혹시라도 화재가 나면 큰 일이겠다는 것이었다. 골목길들이 소방차가 들어올 만큼 넓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들과 상점들은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건축 자재도 인화성이 높아 보였다. 만일 인파로 붐빌 때 화재가 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를 안내하는 사람에게 미국이라면 이런 곳에 건축이나 영업허가가 절대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코멘트를 했다. 그러자 그 안내자는 내 말에 동의하는 듯 하면서도 각 식당과 상점에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고 화재에 대비해 훈련이 잘 되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안내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으면서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내가 추가로 내 생각을 전했다. 아마 국가적 차원에서 정돈이 필요할 것 같다고. 국가에서 식당, 상점 그리고 집 주인들에게 보상을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날 이태원 참사 자리를 다시 찾았다. 이태원에 갈 일도 있었지만 참사의 현장과 사람들의 추모 모습도 찾아보고 싶었다. 세상을 떠난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많은 꽃들과 메시지들은 나를 다시 한 번 숙연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 나를 화나게 한 게 있었다. 추모 장소 정중앙에 엄청나게 큰 사이즈로 자리잡고 있었던 고국의 두 정당들이 내 건 플래카드였다. 당연히 정당들도 추모에 참여해야 하겠지만 과연 정당들이 그러한 사이즈로 그 곳에 플래카드를 칠 권리가 있는지, 아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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