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席藁待罪(석고대죄)와 負荊請㠑(부형청죄)

2022-11-10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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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적(藁)을 깔고 엎드려 처벌을 기다린다’는 뜻의 ‘석고대죄’라는 말은 TV의 사극(史劇)에서 단골로 나오는 말 중의 하나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범수채택열전(范睡蔡澤列傳)에서 유래한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승상(응후) 범수(范睡)는 원래 위(魏)나라 사람이었는데 친구인 정안평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하여 진나라로 도망쳤는데 소양왕이 그를 등용하였고 공을 많이 세워 크게 신임을 받았다.

그 후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정안평을 왕에게 추천하여 조(趙)나라를 공격하게 했으나 정안평은 적군에 포위당하여 위태로워지자 병사 2만 명을 데리고 조나라에 투항하고 말았다. 이에 승상 범수는 거적을 깔고 소양왕에 정안평을 추천한 자신을 벌주기를 청했다.(應候席藁待罪/응후석고대죄) 이후 석고대죄는 죄에 대한 최종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먼저 스스로 지은 죄에 책임을 지고 왕의 처벌이나 명령을 기다리는 행위를 뜻하게 되었다.

그 당시 진나라의 법은 사람을 추천하여 추천받은 자가 죄를 지으면 추천한 사람도 죄를 짓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승상인 범수가 받게 될 죄는 삼족(三族)을 멸하는 죄에 해당했다. 그러나 그를 지극히 아꼈던 소양왕은 그의 죄를 사(赦)하여 주었고 오히려 그를 후하게 대하여 마음을 달래주었다.
또한 2년 후 범수가 하동 태수로 추천했던 왕계(王稽)가 제후들과 내통한 죄로 처형당하자 범수는 승상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소양왕은 이번에도 범수를 처벌하지 않고 벌을 면해 주었으니 그가 범수를 얼마나 아끼고 신뢰하였는지 알만 하다.


석고대죄와 비슷한 의미로 사마천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가시나무 채찍을 메고 스스로 죄값을 청하다’라는 뜻의 부형청죄(負荊請㠑)라는 말이 있다. 전국시대 조나라에 염파라는 대장군과 대신인 인상여가 있었다. 인상여는 뛰어난 언변과 배짱으로 공을 많이 세워 대관(大官)에 봉해졌는데 그 지위가 대장군인 염파보다 높았다.
염파는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나라를 위해 싸운 자신보다 더 높은 지위를 받은 인상여가 못마땅했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인상여는 자신에게 불만을 가졌던 염파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조나라의 사신으로 보물인 화씨벽(옥의 원석)을 가지고 진나라 왕을 찾아갔을 때, 진왕이 화씨벽만 빼앗고 약속한 성을 내주려 하지 않자 진왕을 조목조목 크게 꾸짖었던 일과, 그 후 다시 조나라 왕과 함께 진왕을 방문하여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진나라 왕과 담판하여 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조나라를 구했던 이야기를 하며 나라의 위급함이 먼저이지 사사로운 원망은 뒤로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심히 부끄러워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부형/負荊)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하였으며(청죄/請㠑)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으며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벗’이라는 뜻의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하게 되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어떻게 해서든지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상대방을 모함하고 죄를 뒤집어 씌우는 철면피한 사람들이 흔한 요즘 세상에서 인상여와 염파와 같은 대장부를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 일일까.
gosasungah@gmail.com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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