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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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62)

2022-1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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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체부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것들

우체부가 되고 나서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가장 처음 알게 된 것은 주소가 홀수와 짝수로 나뉘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즉 길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홀수로 번지가 이어지고 길 건너에는 짝수로 번지가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쪽은 9800, 9802, 9804로 짝수 번지가 부여되어 있고 그 건너편은 9801, 9803, 9805로 홀수 번지로 나간다. 우체부가 되기 전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도 도로명 주소 체계로 바뀌면서 홀수 짝수 주소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뉴욕으로 가는 전세 버스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버스에서도 좌석번호가 홀수와 짝수로 나뉘어 있었다. 이렇게 좌석 번호가 홀짝으로 나뉜 것은 1985년 대만에서 처음 보았다. 대북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두 사람의 좌석번호가 21번과 23번처럼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창구의 발권 직원에게 ‘우리는 일행이어서 같이 앉고 싶다’고 했더니 그 직원은 ‘그래서 번호가 그런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뭔 소리야?...’하면서 기차에 탔더니 1번 좌석 옆이 2번이 아니고 3번이었다. 그때 좌석을 홀수 번호와 짝수 번호로 나누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도로명을 표기하는 방법도 퍽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로명은 앞에, 주로 사람 이름을 딴, 길 이름을 놓은 후 뒤에 도로를 나타내는 명사를 붙인다. 미국 대통령 관저인 화이트하우스 앞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은 컨스티튜션 애비뉴(Constitution Avenue)이다. 여기에서는 애비뉴를 사용했는데 보통은 Road(Rd), Street(St.)가 널리 쓰이고 그 외에도 Avenue(Ave.), Lane(Ln.), Drive(Dr.), Court(Ct.), Square(Sq.), Circle(Cr.), Terrace(Ter.), Way(Wy.), Highway(Hwy.), Place(Pl.), Parkway(Pwy.), Turnpike(Tnpk.), Boulevard(Blvd.) 같은 것들이 쓰인다.


워싱턴 DC 바로 옆에 있는 알링턴 카운티는 길 이름 붙이는 방식이 독특하다. 카운티 중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50번 도로(알링턴 블러바드 Arlington Blvd.)를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나눈 후 그 도로 가까이에서부터 1st St., 1st Rd., 2nd St., 2nd Rd., 3rd St., 3rd Rd처럼 숫자를 높이면서 St.와 Rd.를 번갈아 사용한다. 남쪽과 북쪽이 같은 길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소에 북쪽(North)의 N과 남쪽(South)의 S를 추가한다. 알링턴 카운티의 도로이름 붙이는 방법 중에는 ABC 순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즉 도로의 이름 붙이는 순서가 바튼 스트리트(Barton St.), 클리브랜드 스트리트(Cleveland St.), 다니엘 스트리트(Daniel St.), 에지우드 스트리트(Edgewood St.), 필모어 스트리트(Filmore St.), 가필드 스트리트(Garfield St.), 하이랜드 스트리트(Highland St.)로서 도로 이름의 첫 글자가 ABC 순서인 것이다. Garfield St.로 가는 사람이 Filmore St.를 지나고 있다면 다음 블록이 목적지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경우에도 가로는 A St., B St., C St.의 순서로, 세로는 1st St., 2nd St., 3rd St 순서로 진행된다. 그래서 가야 할 곳이 G St.이고 차창 밖 이정표에서 F St.가 보인다면 다음 블록이 목적지임을 알 수 있다. 워싱턴 DC에는 미국 50개 주의 이름 뒤에 Ave.를 붙인 도로가 있다. New York Ave., Florida Ave.처럼 말이다.

가끔 길에서 우체부에게 “혹시 우표 가진 것 있나요? 편지를 부쳐야 하는데 우표가 없어서요. 혹시 가진 우표가 있다면 제게 한 장 파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우체부는 우표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고객 서비스의 측면에서 보면 우표 몇 장쯤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체부의 생명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우체부가 우표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그 우표의 판매대금 즉 현찰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강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미국은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산다. 그래서 우체부가 우표를 판매한 푼돈도 강도 범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체부는 가끔 ‘강도를 만나게 되면’이라는 내용의 업무교육도 받는다. 그런 교육의 핵심은 한결같다. ‘달라는 것 다 주라’는 것이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우체국의 우편물 배달 차량은 매 배달구역마다 한 대씩 배정되어 있다. 유심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체국 차량은 일반 자동차에 다는 그런 자동차 번호판을 달지 않는다. 우체국 스스로가 붙인 번호가 있을 뿐이다. 자동차에 관한 안전 검사와 배기가스 검사도 우체국 안에서 스스로 해결하는 것 같다. 전국 단위로 계산하면 엄청나게 많은 업무용 차량을 보유하고 있기에 우체국은 특별 취급을 받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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