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과 위기를 안고 사는 것이다. 하루라도 긴장을 풀 수 없고, 자만할 수 없고, 하나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사는 이민자로서 고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은 언제나 꺼지지 않는다. 세계 속에 빛나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면서 어깨에 힘을 주며 한국 사람이라고 자랑할 때도 있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했다던가, 한국에서 직업적으로 근무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더욱 열정을 내어 한국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소식을 들을 때는 할 말을 잃는다.
한국은 열정의 나라이다. 스페인이나 남미의 나라도 열정이 있지만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열정이 있다. 그 열정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하였고, 또 앞으로도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품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이 이전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였지만 지금은 세계 20개 국가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사고는 이러한 모든 자부심과 기대감 그리고 한국에 대한 애정에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어깨를 축 처지게 하였다. 핼로윈 축제를 위해 이태원으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사랑스럽고 귀한 청년들이 그 불타는 열정을 하루 밤이라도 태우고자 모여들었을 때만해도 뜨겁고 푸른 밤이었을 것이다.
오고가는 사람들, 각기 여러 모양으로 분장한 모습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오고 가는 모습에서 한국속의 세계축제를 만끽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상상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몇 년전에 일어난 세월호의 망상이 다시금 떠오르게 하면서 또 다시 가슴이 울렁거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할 말을 잃게 한다. 또 이런 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니 부끄럽기만 하다.
154명의 아까운 우리 아들, 딸, 청년, 청춘, 금쪽같은 우리의 미래들이 또 이렇게 큰 참사를 당했으니 우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것은 멀리 떨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고, 우리 집의 일이고, 내 친구, 내 자녀, 내 식구의 일인 것이다. 사랑스러운 우리 청춘들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들을 그렇게 슬프게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청춘들이 아픈게 아니라 지금은 청춘들이 슬퍼하고 있다. 한국의 청춘들이 지금 모두 울고 있다. 그들의 열정이 눈물로 식어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그렇게 슬퍼하게 둘 수는 없다. 아픈 청춘은 있을지언정 그 청춘들이 슬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청춘들을 슬프게 한 나라가 아파야 한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아픈 것처럼 청춘들이 슬퍼할 때 나라는 좀 더 심하게 아파야 한다. 청춘들이 울게 만든 것에 대해서 가슴을 쳐야 한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아파해야 한다. 사랑하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하고, 편하게 살게 하지 못한 것을 아파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도서3:4)
지금은 울자. 지금은 아파하자. 하지만 또 언젠가는 웃을 때가 있고, 춤출 때를 생각하자. 슬퍼하는 청춘들이 웃고, 아픈 나라가 건강한 나라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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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