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분주함

2022-10-24 (월)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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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된다. 예배를 드리고 돌아와 부지런히 아침 준비를 하면 손주, 손녀와 약속된 일상이 기다린다. 어느 날은 손주를 보기 위해 딸네 집으로, 어느 날은 손녀 학교에 봉사를 하기 위해 학교로 걸음을 옮긴다. 돌아오면 어느새 오전 시간은 다 지나고 점심때다. 오후가 되면 해야 할 과제와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저녁때다. 부지런히 저녁을 마치면 또 강의를 듣고 책을 읽어야 한다. 하루가 바쁘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될 무렵, 나는 내 전공과 다른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벌써 공부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당연하게 해왔던 많은 일들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시절, 집 안에 머무르는 무료함을 새로운 공부가 채워주었다. 하루가 덧없이 흐르는 것 같더니 이제는 모두가 코로나에 적응이 되었다. 줌 미팅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게 되었고, 질병에 대처하는 모습도 많이 유연해졌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새로운 분주함이 내 삶에 자리하게 되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때로는 분주하다는 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쓸모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너무 바쁘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책에서는 바쁜 것은 나쁜 것이라 말한다. ‘바쁨은 분주함이고, 분주함은 우리의 일상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서두름과 허둥댐이다. 분주함은 위급함이고 주의 산만이고 소모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하거나, 규모있게 쓸 수 있는 시간을 산만하게 사용하거나, 정작 필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뭘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다정한 눈맞춤, 파란 가을 하늘, 노랗고 빨갛게 물든 예쁜 낙엽들, 집집마다 가을을 장식한 예쁜 호박과 허수아비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조용한 시간... 마음에 담아야 할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며 가을을 보내고 있는 나. 오늘은 분주함을 잠시 내려놓고,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을 마음에 담으며 낙엽밟는 소리와 함께 가을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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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씨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1998년 도미 후 상항 기독 합창단 반주자를 역임했고, 현재 상항 중앙 장로교회 반주자로 섬기고 있다. 실리콘밸리 롸이더스그룹 주최 육아수기 공모전에서 2006년 금상, 2016년 은상, 2021년 동상을 수상했다.

<양주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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