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10월 어느 날 우리 집에서 차로 달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관광지 하퍼스 페리로 산책하듯 숲길 148마일을 걸었다. 이따금 격무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힐 겸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오기에 좋다는 아들의 말에 몇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산기슭에 차를 세우고, 아들은 자전거로, 우리 부부는 도보로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잘 다듬어진 흙을 밟으며 오솔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곳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그리고 웨스트버지니아의 3개 주를 잇는 곳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시루떡을 빚은 듯 험준한 산들로 둘러져 있다. 오래 전에는 우마차가 다녔을 산속의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가벼운 차림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사람들 사이로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산책하기에는 한적한 곳이라 한없이 걷고 싶은 숲길이다.
골짜기의 높은 돌담을 끼고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아래는 녹조로 뒤덮인 고인 물이 길 따라 펼쳐져 있어 자칫 잔디로 오인하고 풍덩 발을 담글 뻔…. 다른 한편에는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강이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눈이 부셔 연신 실눈을 하며 걷는다. 갑자기 강 쪽에서 어느새 나타났는지 레프팅하는 아가씨들의 무리가 가파르게 흐르는 물살 사이로 오밀조밀 솟아있는 돌덩이 사이를 행여 보트가 뒤집힐 세라 떠내려가며 비명을 지른다.
넓고 긴 포토맥강에는 유난히 많은 여러 모양의 돌들이 솟아있어 주위경관이 아름다울 뿐 더러 돌에 부딪혀 미끄러지듯 흐르는 물줄기 소리조차 리듬을 타듯 흘러간다.
골짜기 산책로를 따라 이제 막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를 음미하듯 마시다 막 지칠 때쯤 도착한 곳이 이곳에서는 꽤나 유명한 명소인 하퍼스 페리다.
주중임에도 북적이는 관광객과 함께 포토맥강의 다리 위를 걷노라니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자물쇠가 철책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얼핏 보아도 사랑의 징표인듯하다. 이곳에는 발렌타인데이 때면 젊은 남녀들이 찾아 와 그들만의 ‘철석 같은 사랑’ (padlock love)을 약속한 후, 가져온 자물쇠는 철책에 매달고 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침범’하지 못하게 열쇠는 강물에 던져 버린다는 사랑의 맹세를 하는 장소다.
비탈진 언덕 위에 켜켜이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캐넌볼 델리에서 치킨샌드위치 한 박스를 주문, 포토맥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야외 의자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는데, 가까이 기암괴석의 돌산을 깎아 만든 굴 안으로 이따금 볼티모어-오하이오 철로 위를 화물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짐칸을 매어 달고 달려 들어간다.
발길 닿는 대로 유적지를 둘러보는데, 유독 마주 보고 서있는 두 비석이 눈에 띄인다. 하나는 노예해방운동의 대명사로 알려진 존 브라운이 1859년 10월 16일 하퍼스 페리 병기창을 공격했다는 기념비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공격에서 사망한 최초의 흑인 희생자 헤이워드 쉐퍼드의 기구한 생애를 비문으로 새겨 놓은 것이다.
노예해방을 극구 반대하였던 남군의 열성 지지자들이 존 브라운의 흑인 해방운동을 폄하 하기라도 하듯이 한 평범한 흑인의 죽음을 미사여구의 글로 추모하고 있다.
존 브라운은 1859년 12월 2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시인 헨리 워즈워즈 롱펠로우는 이날 처형소식을 접하고 “오늘은 언젠가 회오리바람을 몰고 올 미국역사에서 혁명의 날(This is sowing the wind, to reap the whirlwind, which will come soon…)로 기록 될 것”이라 기술하고 있는가 하면, 현장에서 존 브라운이 처형당하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링컨대통령 저격범 존 윌크스 부스 역시 “존 브라운은 정녕 용감한 사람”이라 되뇌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만민평등을 필사적으로 부르짖던 존 브라운의 노예해방운동 첫 희생자가 흑인이라니, 역사의 여신 클라이오의 애꿎은 장난이 아닌가? 여행을 하다 보면 안티탐 전적지와 같은 미 동부 지역에 남아있는 남북전쟁의 그 많은 흔적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우연히 이곳에서도 역사의 한 단면을 접한 유익한 한 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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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