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선물
2022-10-20 (목)
이재순 / 인디애나
일흔다섯번이나 생일을 맞이했다. 이렇게 오래 살다 보면 생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더더욱 생일 선물은 송구스럽다. 장신구도, 옷도, 살림도구도 이제는 정리할 때이지 무엇을 더 모을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생일 선물을 받는게 아니라 남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 무엇을 누구에게 줄까?
태국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불교신자인 그녀는 생일에 5번의 보시를 하는 게 습관이라고 했다. 보시는 불교인이 지켜야 하는 8정도 중의 하나로서 남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공덕이다. 그녀가 보여준 사진에는 가난해 보이는 시골 초등학교 애들이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밝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허술한 피난민 거처에 음식을 전하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태국 북서부에 있는 어촌 마을 라룽이라는 곳에서 왔다. 몇 년 전부터 마얀마 로힝가 피난민들이 몰려 와서 가난했던 마을이 더욱 어려움을 격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 그런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보내주자. 그리고 그 난민들이 살고 있는 임시 숙소에 생활 필수품을 보내주자. 얼마나 좋은 생각인지 가슴이 뛰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외국의 어떤 아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게 그들의 삶에 큰 변화를 주지는 못할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누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빚진 내 몫을 조금 갚는다는 생각에 기뻤다.
내 어릴적 수원 산골 학교에 누군가가 보내준 미국산 부러지지 않는 노란 연필과 잘 지워지는 길다란 고무가 도착했다. 그 시절의 연필은 잘 써지지 않아서 입에 침을 발라가며 써야 했고, 깎을 수 없이 촉이 부러졌다.
고무는 잘 지워지지 않고 계속 문지르면 공책에 구멍까지 나곤 하였다. 그 연필과 고무는 시골 아이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필수품이면서도 빛나는 보석처럼 설레임을 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일년에 두번씩 우유가루 배급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고마운 분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어느날 학교가 끝나고 떼를 지어 집으로 돌아오던 중 시골 길가에 쉬고 있는 몇대의 미군 트럭을 만났다. 무서워 도망가 논두렁에 엎드린 꼬마 애들에게 미군들은 웃으며 초콜릿과 큼직한 오렌지를 던져 주었다. 그때의 초콜릿 맛을 잊을 수 없다. 오렌지 같은 과일이 세상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 기억에 깊숙히 자리 잡은 고마운 추억을 그분들은 기억이나 할까? 선업은 그렇게 가벼운 깃털처럼 날아가 닿는 곳에서는 눈덩이처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나는 잘 안다.
살다 보면 즉석으로 결과를 알게되어 보람을 느끼는 때도 많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알게 모르게 저지른 선업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베푸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 크기와 무게는 받는 사람들만 안다. 바로 그 점이 우리들이 계속해서 선업을 지어야 하는 이유인지 모른다. 올해 던진 어느 할머니의 생일 선물이 태국의 작은 마을 아이들에게 눈덩이처럼 큰 추억과 웃음을 가져다 주었으면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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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인디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