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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 덕분에 나팔 불기

2022-10-19 (수)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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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내가 원님이 되든지 아니면 원님 덕분에 나팔을 불든지 둘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원님이 되고자 한다. 할 수 있다면 원님이 되어야 한다. 원님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원님을 성공했다든지 출세했다고 한다. 원님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원님이 되려면 원님의 혈통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든지 아니면 노력을 해서 원님이 되어야 한다. 노력을 해서 원님이 되는 길은 지식이든지 아니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원님이 되려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승진을 위해 경쟁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다. 옛날에는 반딧불 밑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을 형설의 공이라고 했고, 어려운 시절을 지나면 좋은 날이 온다는 고진감래라는 말이 우리 귀에 익숙했던 이유는 바로 원님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말들이 들렸기 때문이다.

원님이 행차할 때는 늘 앞에서 원님이 길을 가도록 길을 비키라고 나팔을 불었다. 나팔수는 그동안 불지 못한 나팔을 원님이 행차하는 때에 부니 얼마나 좋았을까? 있는 힘과 기량을 다해 나팔을 불었을 것이다.
원님이 된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영광이고 가문에게는 영광이겠지만 사실 그 역할과 책임은 쉬운 일은 아니다. 원님은 늘 좋은 것만 먹고, 편하게 자고, 일반 사람들과 다른 무엇인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약간 다른 것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것은 다 똑같은 것이다. 원님이 된다는 것은 평민보다는 더 많은 책임과 무거운 사명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원님이라고 하면 약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춘향전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만 변사또라는 사람이 성춘향에 대한 부정적 편향 때문인지 원님이든지 사또는 늘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고약하고 욕심 많은 사람으로 인식이 된다. 세상에는 나쁜 원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정직하고 존경받는 원님들이 더 많이 있다. 이웃을 위하고, 종업원을 위하고, 회사원을 위하고, 제자들의 기쁨을 생각해주는 많은 착한 원님들이 있다.

원님이 된다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원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원님이 되어야 한다. 원님이 가마만 타고 출타할 뿐 아니라 원님 앞에서 나팔을 부는 나팔수에게 자부심과 즐거움과 기쁨을 주어야 한다. 이런 원님들이 곳곳 마을과 고을 나라마다 있을 때 그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원님은 그런 원님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 원님이 되어야 한다. 내가 원님이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팔을 불게 해야 한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과 기쁨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부자는 그 풍요로움을 통해 부족한 사람들이 나팔을 불게 해야 하고, 결정권이 있고 권한이 있는 사람은 그 권한으로 약한 사람들이 나팔을 불게 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하라 (고린도전서 10:33) 우리는 모두는 원님들이다. 정치적인 원님들도 있지만 삶에서 원님의 직책을 갖고 있다. 부모, 사장, 종업원, 교사, 기관의 회장, 교회의 목사, 그리고 여러 곳에서 우리는 원님들이다.

그 원님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팔을 불게 한다면 그 원님은 가장 위대하고 자랑스런 원님이 될 것이다. 원님은 가마타고 행차하고, 나팔수는 신명나게 나팔을 부는 그런 그림을 날마다 그린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일까?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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