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미국 연방우정국(USPS, United States Postal Service)은 엄밀히 말하면 정부기관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체부가 공무원은 아니다. 우정국은 에이전트(agent)인데 정부는 아니지만 정부와 매우 가까워서 한국식으로 말하면 공사(公社)쯤 된다. ‘미국 우체부가 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은 일찍부터 있었다. 고등학교 동기 동창 때문이었다.
같은 지역에 먼저 이민 온 고교 동기 동창이 있어서 이민 초기에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요청하면 아침이고 밤이고 달려와서 도와주었다. 그 친구와 그의 아내가 부부 우체부였다. 이민 초기에는 많은 것이 궁금했기에 미국 우체부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었다. 그로부터 들은 얘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주권자도 우체부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일 년에 휴가가 3주 이상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휴가는 1주일이었다. 물론 연월차 휴가가 있기는 했지만 2천 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직장 분위기상 신청하기가 어려웠다. 큰 아이 초등학생 시절에 학부모 행사 참여를 위해 하루 휴가를 내려고 했더니 담당 이사가 “그렇게 집안일이 중요하면 계속 집에 있게 해 줘?”라는 말을 했다. 법률과 회사 내규에 보장된 휴가를 내겠다는데 ‘사직’이라는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주일도 아니고 무려 3주일 이상 휴가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영어 실력으로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 없었지만, 일단 우체부가 되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우체국은 고급 영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니고 많은 영어가 필요하지도 않아. 그러니까 네 영어 정도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추천할 만한 직장은 아니야. 우체부가 되면 생활이 매우 단순해져서 우체국 밖의 세상일을 너무 몰라. 시야가 좁아지지. 그래서 별로야.”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의 부정적 의견 표명에도 불구하고 ‘연간 3주일의 휴가’에 끌려서 우체국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현직 우체부인 그 친구에게 어떻게 지원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우체부에 대한 전체적인 것을 알려주기 위해 ‘우체부는 도회지 지역에서 배달하는 시티 캐리어(City Carrier)와 도회지 외곽지역에서 배달하는 루랄 캐리어(Rural Carrier)가 있다’는 것 등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지만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도통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지원하고 시험을 보아 합격해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원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접속했더니 사는 지역에서는 시티 캐리어 모집이 없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되는 윈체스터라는 곳에서 루랄 캐리어를 모집하고 있었다. 빨리 우체국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지원했다. 그때 심정은 ‘합격시켜 주기만 한다면 까짓 한 시간 반의 출퇴근이야……’하는 심정이었다.
얼마 후 시험 응시에 필요한 자료가 든 봉투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지정된 날에 윈체스터로 시험 보러 갔다. 당시 시험은 OMR식 컴퓨터 채점이기 때문에 숫자가 있는 동그라미를 연필로 까맣게 칠하는 방식으로 답을 표시했다. 이건 옛날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시험을 컴퓨터로 치른다. 자기 집 컴퓨터에서 인성검사를 치르고 본시험은 응시생 각자가 자신이 선택한 시각과 시험장에서 각 응시생에게 배정된 컴퓨터로 1:1 시험을 본다.
시험 내용은 지극히 실무 중심적이다. 예를 들면 주소 A를 예시하고 A’, A’’, A, A’’’의 네 주소를 제시한 후 A를 고르게 한다. 몇 개의 주소를 가진 네 개의 그룹을 예시한 후 문제가 제시한 주소가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를 물어본다. 우체국 실무에서 사용하는 양식을 제시하면서 그 양식의 의미를 이해하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잘해야 실무에서 시간이 절약된다. 시간이 돈이니까.
시험을 치르고 나면 자신의 점수가 통보된다. 합격 여부를 정하는 점수가 있다. 합격 점수를 넘은 점수는 향후 몇 년간 유효한지도 알려준다. 우체국 시험 자체는 절대 평가 방식이기에 자신의 점수를 가지고 반복해서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지원할 수 있다. 성적이 낮아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다시 시험을 칠 수 있다. 여러 개의 성적 중에 가장 높은 것이 자신의 점수가 된다.
합격 점수 이상의 인원을 대상으로 다음 절차를 진행한다. 처음 보았던 그 시험에서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지만 다음 절차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하루 왕복 3시간의 거리를 운전하는 것도 부담이 되고 기다리는 동안 좀 더 알아본 결과 루랄 캐리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시티 캐리어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기다렸더니 사는 곳 가까운 곳에 시티 캐리어를 뽑는다는 공고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