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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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IAN

2022-10-09 (일) 서윤석 / 은퇴 의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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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이언은
바다를 몰고 육지로 올라왔다

아메리카 독수리마저 높은 나무에서 날개를 접고
예쁜 꽃새들이 재잘거리는 동산에
그는 하마같은 입으로 핵폭탄을 뿜었다
짙은 안개 속, 비바람과 구름을 휙휙 돌리면서
노아의 홍수를
히로시마, 나가사키 폐허의 들판을 주고 갔다

매연가스와 플라스틱 봉지를 삼켜
불룩한 배를 내밀면서
오렌지 향기에 취했는지
빠른 부채춤으로 버티던 야자수를 뽑고
콘크리트로 솟아있던 건물을 부시고
하얀 선박들의 줄을 끊어 날리고 포효했다
커다란 독사와 악어마저도 삼키고
반도의 허리를 조이고 돌리면서
북동쪽 바다와 대륙으로 퇴장했다


진해지는 자외선으로 서서히 병들어가는 기상청은
북극과 남극을 헤매면서
더럽혀진 오대양을 마시던
그의 하얀 눈을 탐지하고 보도했다

이언이 하늘에서 외친다
‘암흑 속에서 살아갈 너희들, 원시인들의 짐이 참 무겁다.'
우리 모두 무릎을 꿇고 업드렸다

<서윤석 / 은퇴 의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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