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부터 내린 눈은 일요일을 지나며 진눈깨비가 되었고, 밤새 얼어붙었다. 월요일 아침, 드라이브 웨이 위의 얼음은 삽으로도, 망치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자연은 여전히 인간의 힘을 가볍게 넘어서 있었다.
나는 AI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는 막히면 먼저 묻는 존재가 되었다. AI는 구체적인 이름과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치 오래 살아본 사람처럼 침착하게.
매장에는 내가 찾던 물건이 없었다. 대신 무거운 모래 자루들이 놓여 있었다. 시니어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그때 뜻밖의 우연처럼, 리턴된 Snow Joe MELT가 나타났다. 필요할 때 나타난 해답은 종종 기적처럼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다시 AI에게 사용법을 묻고, 나는 얼음 위에 조심스럽게 그것을 뿌렸다. 잔디를 피해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는 조언. 인간은 이제 행동보다 질문이 앞선다.
얼음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옛 엿장수가 엿을 자르듯 얼음을 조금씩 쪼갰다. 한 번에 끝낼 수 없는 일,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노동. AI는 삽을 대신 들어주지는 않는다. 다만 방향만 가리킨다.
그럼에도 길은 열렸다. 알지 못했던 물건, 알지 못했던 지식 덕분에 자동차 한 대가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이것이 AI 시대의 지식일 것이다. 축적이 아니라 호출, 경험이 아니라 접근.
편리함을 얻는 만큼,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 것일까? AI는 편지를 쓰고, 번역을 하고, 병에 대해 조언한다. 머지않아 사무실에 앉아 하던 많은 일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 같은 시니어에게 AI는 축복이다. 약해진 몸을 대신해 질문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손자녀 세대는 다를 것이다. 그들은 AI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할지도 모른다. AI와 경쟁하든가 AI를 잘 이용하든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드라이브웨이에 서서 나는 열어 놓은 길을 바라보았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오늘을 건너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문득,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다음 질문을 아직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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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웅 시인, 수필가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