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우님들과 함께 최근 주목 받는 영화 ‘왕사남(왕과 사는 남자)’을 보았다. 유쾌한 재미, 묵직한 감동과 함께 내면의 뿌듯함을 느꼈다.
천만 관객이 예상될 정도로 세간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받게하는가? 출연 배우들의 열연, 작가나 영화감독의 휼륭한 시나리오나 연출기법 등등 여러 요인들을 들 수 있겠으나, 이것이 다는 아닐지 싶다. 여기에는 아마도 570여년 전 인물이지만, ‘왕사남’의 주요인물, 엄흥도의 삶에서 느끼는 인간애적 공감도 한 몫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멸문지화(滅門之禍) 시키겠다는 서슬퍼런 왕명(王命)까지 거스르며, 가엾고 처연한 왕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용기있는 삶은 영화적인 재미는 물론 역사의 무게와 함께 오늘 우리들이 지금 여기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하여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조선시대 대신(大臣)이나 양반도 아닌 중인(中人)으로 말 그대로 미관말직(微官末職)인 향리(鄕吏) 우두머리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노산군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지 않았는데, 엄흥도가 곡(哭)하고 관곽을 준비해 장사를 치렀다.”는 단 한 줄의 기록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미미해 보이는 일개 호장 엄흥도가, 단종 유배와 관련하여, 보여준 용기있는 삶은 당대의 그 누구보다 무게있고 의미로웠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목 받을만 하다. 많은 사람들은 왜 ‘왕사남’과 불쌍히 죽은 단종을 보듬어 않은 엄흥도의 삶에 공감하는가?
장사(葬事)를 금지하고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어명을 거부하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린 단종이 불쌍하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엄흥도 말고도 고을 사람들 가운데 어찌 애절한 마음을 지닌 이들이 없었겠는가. 아마도 모두 속으로는 시신을 묻어 주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삼족을 멸하겠다는 왕의 가혹한 어명(御命)이 두려워 감히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곤경에 처한 자, 억울함을 당하는 자에 대한 동정심, 자비심, 따듯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선뜻 용기있는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
바로 그 때 ‘따듯한 인간애의 사람’ 엄흥도는 동시에 ‘용기있는 그 한 사람’이 되어 홀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어디서 나올까? 참으로 용기있는 행동은 한 순간 불쑥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용기는 ‘나(Ego)’를 초극(超克)하여, 나와 ‘그’를 하나로 봄에서 나온다. 그는 단종과 왕궁에서 군신(君臣) 관계로 맺어진 사이도 아니었고, 왕의 먼 친인척도 아니며, 하다못해 전주이씨 종친(宗親)도 아닌, 일개 고을 호장이었을 뿐이다. 단종과는 사적으로 별 인연이 없는 무관한 사이다. 그러나 그는 처연하게 죽임을 당한 단종과 자신을 하나로 보았다. 나와 그를 하나로 볼 때, 죽음을 넘어선 용기, 그를 위하여 내가 죽을 수 있는 용기가 나온다.
두려움 없는 용기는 세상 욕심과 미련을 내려 놓음에서 나온다. 대역죄인으로 죽음을 맞이한 단종이니 그의 시신을 거둔다고, 엄흥도에게 출세 길이 열리거나 그가 칭송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역시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자는 마음을 지닌 평범한 인간이니, 자신의 행동으로 가족들 나아가 친가(親家) 외가(外家) 처가(妻家) 세 집안에 닥칠지 모를 족멸(族滅)의 화를 내다보며 깊은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려놓음을 택한다. 실제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에 장사한 이후, 그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일생 숨어 지내며, 고달프고 험난한 인생을 마쳤다 한다.
아름다운 용기는 세상의 무도(無道), 불의(不義), 역천(逆天)을 거부하고 인간다움과 하늘의 뜻을 지켜내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는 왕의 불의하고 비인도적인 명령을 목숨을 걸고 거부하고 장례를 치룬다. 기독교와 유대교 성경에, 아기 출산을 도울 때 히브리 사내아이면 죽이라는 이집트 왕(파라오)의 반인륜적 왕명을 거부하고,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살려준 히브리인 산파 이야기가 나온다.(출애1:17) 엄흥도나 히브리 산파나 모두 용감하게 왕의 불의한 명령을 거부하고 ‘하늘(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용기는 하늘 뜻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엄흥도의 따듯한 마음과 용기있는 행동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까지, 영월에 단종의 묘가 있게 하였다. 또한 조선에도,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무도하게 죽인 왕의 부도덕(不道德)함에 의로운 행동으로 맞선, 적어도 ‘그 한 사람 민초’가 살았음을 말해준다. 전해져 내려오는, 엄흥도의 삶의 무게와 의미를 담은 이 말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다면 나는 달게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