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뭐래도 숲의 주인은 나무다

2026-02-05 (목) 08:00:17 김지나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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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하루 동안 내린 눈의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나 보다. 일주일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의 양이 1미리도 줄지 않은 만큼 곳곳에 수북이 쌓여있으니 어지간히 추운 날들의 연속이었지 싶다. 눈이 온 양만큼이나 그대로 인 우리 집 뒷마당의 풍경은 그야말로 하얀 얼음 빙판이 따로 없을 만큼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늙수레한 숲을 하얗고 빛나는 겨울 왕국으로 만들어준 눈에게 눈 호사를 하는 인간은 그저 고맙다.

하지만 얼음 땅을 좋아할 리 없는 사슴 가족에게는 천재지변이 따로 없을듯하다. 차갑지만 흙을 밟으며 떨어진 메마른 열매를 호시탐탐 노리며 돌아다녔을 사슴이 스케이트 날처럼 바짝 언 발톱 끝으로 내딛는 시린 얼음 땅은 묵중한 몸뚱아리로는 감당할 수 없을 듯 위태롭다. 가장 어린 아기사슴이 다리를 조금씩 흔든다. 이내 앞다리를 구부리며 얼음 위에 얹더니 뒷다리를 모두 접어 차갑고 차가운 언 얼음 땅에 배를 눕힌다. 어? 너무 차가울 텐데… 내 배에 그 차가움이 전달되어 배에서부터 냉기가 차오른다. 따뜻한 아랫배가 언 땅을 데워주려나 싶었는지 뒤따른 사슴이 앞다리로 살살살 언 땅을 몇 번 두드리더니 먼저 앉아버린 사슴에 시선이 머무른다. 괜찮다는 맑은 눈을 감지라도 했는지 이내 뒷다리를 접어 앉는다. 마치 따뜻한 배의 기운이 두텁고 짱짱한 얼음 땅의 기운을 녹일 수 있는 것처럼 소리 없이 얼굴을 든다.

한 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아기들의 몸짓을 가만히 보던 엄마 사슴이 주위를 살핀다. 고개를 바짝 들고 있는 아기들의 눈망울이 배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을 이겨내고 있음을 함께하고 싶은지 몇 발짝 아기에게 다가서더니 서쪽으로 기운 해를 바라보며 천천히 자리를 잡아본다. 문제는 더 멀리 있는 아빠 사슴이다. 보초를 서야만 하는 아빠는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절연한 모습으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그저 지켜보고만 있는 내가 부끄럽다.


눈은 크고 얼굴은 작아서인지 유독 가련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사슴의 몸은 크다 못해 육중하다. 사슴에 받힌 차는 거의 폐차해야 할 정도로 다른 어떤 동물보다 크고 무겁다. 몸에 비해 다리는 심하게 가늘고 길어서 비대칭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흙 땅을 밟으며 걸을 때도 뒤뚱이지 않고 품위를 지키려 듯 학처럼 느리고 우아하게 걷는다. 두껍게 얼어버린 빙판을 우아하게 걸으려니 보는 이는 아슬아슬하다. 그 모습이 얄미워 보이는 날쌘 다람쥐는 연극무대에서 종횡무진 달리는 졸병처럼 그 옆을 잽싸게 풍성한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다닌다. 땅 위의 전사들이 맥을 못 추는 사이 나무의 전사는 하얀 눈 위가 아이스 무대인 양 미끄러지며 춤을 춘다. 앉아있는 사슴 가족은 땅 위의 전사답게 그 위용을 지키느라 차가워지는 배를 끌어안고 있다.

다람쥐가 스쳐 가는 걸음에 기다랗고 마른 나무들의 긴 그림자가 언 땅을 수놓고 있다. 아름드리나무의 푸르른 잎들이 모두 떠나고 찢긴 껍질에 앙상한 가지들만 삐죽이 하얀 땅에 듬성듬성 꽂혀있다. 그나마 서쪽 해의 기운을 받은 머리끝에 잔잔히 매달려 있는 마른 잎들이 나무 사이에 걸쳐 아슬하게 넘어가는 붉은 해를 붙잡아보려 애쓰며 흔들어본다. 누가 뭐래도 숲의 주인은 나무다. 그 어떤 것도 품을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내어 줄 수 있는 풍성한 나무였다. 앞에선 나무가 뒤에 선 나무를 보여주지 않으려 더 크고 아름답게 꽃피었고 앞의 잎들의 푸르름이 뒤에 선 잎의 찬란한 화려함을 감추어 버렸다. 뒤에선 나무는 더 진하고 더 강한 색으로 숲을 유혹했다. 가짜였을까? 겨울 숲은 참으로 초라하다.

푸르다 못해 진하디진한 어둠 속으로 속내를 감추더니 언제 이렇게 가늘고 늙수구레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걸까? 검은 흙이 바닥을 메울 때는 땅의 기운을 받아 그나마 겨울나무로서의 위용이 있었다. 하얀 눈이 땅을 덮고 눈 얼음이 해의 기운을 받아 가녀린 나무들의 그림자가 흰 땅에 드리우니 검고 헐벗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비로소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 올라가는 푸른 잎을 보며 얼마나 오랫동안 이 땅을 지켰는지 대견해 했고 나무에 둘러싸여 해를 오롯이 보는 것도 어려웠던 봄이고 여름이었다. 사슴의 기다란 다리는커녕 숲 밖을 나와야 비로소 보였던 사슴 가족이었다. 나뭇잎이 펄렁이는 바람길을 따라가야 다람쥐의 숨바꼭질을 짐작할 정도로 빽빽한 모두의 숲이었다. 그랬는데 언 눈 위에 누워버린 사슴 가족이 한눈에 보일 만큼 숲은 텅 비어 있다. 마른 나무 귀퉁이에 붙은 마른 가지에 머리를 박으며 입을 다셔 보는 아빠 사슴은 아직도 그대로다. 사슴 가족의 안식처를 숲 안을 지키는 나무도 어쩌지 못하나 보다.

미국에 온 지 꼭 일주일이 되었다. 젊었을 때는 부재 동안 하지 못한 일이 많아 가족을 챙기고 집을 정리하며 시차는 물론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나이가 드니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나도 두고 온 한국의 정을 놓지 못하고 한없이 빈 숲만 쳐다보고 있다. 가족을 지키느라 서지도 앉지도 못해 안절부절하는 아빠 사슴이나 얼어버린 숲속에서 겨울을 지키느라 그림자만 남은 숲을 지키지 못한 겨울나무처럼 나의 고단한 하루도 더 며칠 가야지 싶다.

<김지나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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