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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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生之樂(생생지락)과 與民同樂(여민동락)

2022-10-06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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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게 한다’라는 뜻의 생생지락은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로 중국 고대 은(殷)나라의 왕 반경(盤庚)이 ‘만민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꾸짖음을 들을 것이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특히 이 말은 세종대왕이 ‘나라의 근본인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며 자주 언급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란 말은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데 ‘백성들과 함께 즐긴다’라는 뜻이다. 맹자는 군주가 백성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즐기려는 마음이 있어야 백성들로부터 왕다운 왕으로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맹자는 왕이 음악을 연주하고 즐기는데 백성들은 ‘우리는 이렇게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데 왕은 즐겁기만 하구나!’, 또 왕이 마차를 동원하여 사냥을 즐길 때 백성들은 ‘우리는 이렇게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데 왕은 사냥만 좋아하는구나!’하며 원망하면 이는 왕이 백성들과 함께 즐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후대 왕에 대한 권계를 목적으로 지어진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세종 29년에 한문과 한글로 간행되었고, 문학상으로는 서사시, 국문학상으로는 악장의 형태를 지닌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제2 장중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흔들리니 꽃 좋고 열매 많나니’라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음악의 천재이기도 했던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의 첫 4장과 마지막 장의 가사에 직접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의 여민락(與民樂)이라 부르고 조선시대 궁중 의식에서 장중하게 연주되는 행악(行樂)으로 사용하였다. 이 노래를 여민락이라 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 정신과 생생지락의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또한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 서문에서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이런 까닭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 하였으니 이 속에도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 당시 많은 백성들은 어려운 한자를 모르고 배울 수도 없어 까막눈으로 일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 어찌 글을 읽고 지식과 지혜를 깨우치며, 자기 의사를 글로 전하고 또한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말을 소리 나는 대로 글로 적을 수 있고, 한나절이면 다 배울 수 있다는 뛰어난 문자를 세종대왕이 친히 만들어 반포한 것은 세계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는 여민동락과 생생지락 통치이념 실천의 결정판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속으로 도약하는데 문화적 원동력이 되는 훈민정음의 반포 576주년이 되는 한글날을 맞아,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눈앞의 당파적 이해(利害)에 사로잡혀 지엽적인 정쟁과 헐뜯기로 동분서주하기보다는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큰 마음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정직하고 성숙한 정치를 해나갔으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gosasungah@gmail.com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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