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써지는 글이 있는가 하면 꼭 써보고 싶지만 안 써지는 글도 있다.
언제부턴가 공원묘지 (Fairfax Memorial Park)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집과 교회 중간쯤에 있어서 교회에 갈 때마다 그곳을 지나면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망자들이 초원의 푸른 잔디에 묻혀 있고 흙으로 돌아간 묘지마다 이름과 생몰연대가 동판에 새겨져 있는 곳. 지난 봄날에 공원묘지의 곳곳을 산책하듯 거닐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전에는 지인들 부모나 그 연배의 친척이 돌아가셨을 때 고별예배 장소로만 여겼던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고인이 되어 그곳에 묻히는 허망함을 겪었다. 이젠 동년배의 부음을 하나둘 받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러다가 조만간 나도 세상을 떠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근에 선배 시인이 이사 갈 곳을 하나 사 놨다고 하길래 그 연세에 웬 이사냐고 했더니 그녀가 묻힐 땅을 사뒀다는 것이다. 양지바른 쪽이니 그 옆에 내 자리도 하나 마련하란다. 농담처럼 죽어서도 가까이 지내자기에 나는 그냥 웃었다.
그 후 겨울이 몇 번 지나고, 공원묘지에 가봤다. 열네 군데의 가든으로 잘 조성된 넓은 묘역과 하늘은 한없이 맑고 안온했다. 구역마다 ㅇㅇ가든 이라는 이름이 도로 표지판처럼 구별되어 있어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위치를 찾기 쉽게 해 놨다. 어디선가 까마귀 소리가 들리길래 그쪽으로 차를 서서히 몰았다. 새로 생긴 묘지에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묵념하고 있었다. 오늘 이 세상을 떠난 고인은 저 사람들에게 누구였을까….
정자가 있고 분수대가 곳곳에 있어서 운치가 참 좋은 곳이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다가 관리사무실에 들렀다. 장례식에 필요한 준비물과 비용을 알아봤다. 관과 묘지와 동판 등을 포함한 장례비는 내 두 달 월급 정도였다. 집을 살 때처럼 묘지구입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 들고 그곳을 나왔다.
내 삶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모른 채 공원묘지를 나서는 기분이 의외로 새처럼 가벼웠다. 남은 생이 보너스처럼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죽음이 내 생의 가까운 미래임을 구체적으로 실감한 날이었다.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어느 따뜻한 봄날에 이사 가듯 그렇게 이승을 떠나고 싶다.
사후에는 재가 되어서라도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세월이 가니 이 또한 부질없는 꿈이었던 것 같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거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마는 아무래도 자식이 사는 미국 땅에 묻혀야 할 것 같다. 죽어서도 어미로 남고 싶은 것일 게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씩씩한 자식도 살다 보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으리라.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으리라. 그럴 때면 훗날 내가 묻혀 있을 이곳에 와서 마음껏 울거라…. 내 기꺼이 너의 울음터가 되어 주리라. 내 삶의 마침표가 너의 울음터 하나가 되어 남는 것으로 나는 족하리.
공원묘지는 출입구가 두 군데 있고, 앞쪽으로 들어와서 뒤쪽으로 나갔다.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이승이고 오른쪽은 저승이다. 여느 때처럼 차들은 제각기 분주히 달리고 있다.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야위어 간다. 잎새들마다 가벼워지고 있다. 때가 되면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리라. 인생처럼, 낙엽처럼,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음을 이 가을에 유난히 가슴으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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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희 전 워싱턴문인회장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