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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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DONDE VOY)

2022-09-29 (목) 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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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메길을 만났다. 올해 62세인 메길은 내가 돌보는 노숙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엘살바도르 출신으로 중학교 음악교사였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아내가 중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월급은 물론이고 치료비가 모자라서 친지로부터 사채를 빌려 치료비로 썼다. 쥐꼬리 만큼이나 적은 월급으론 아내의 치료비를 댈 수가 없었다. 급한 김에 사채를 이용했는데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마약 밀매 단원이었다.

몇 달이 지나서 밀린 빚을 갚지 못하자 빌린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기 시작했다. 돈을 갚을 수가 없다면 마약이라도 팔아서 갚으라고 강요했다. 마약단원이 메길이 근무하는 학교에도 찾아와서 교장을 협박해 메길의 월급을 가로채 갔다. 마약단의 횡포에 교사직도 잃고 아내도 중병에 화병을 더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메길은 비통한 마음으로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후 칠흑 같은 야밤에 그의 승용차를 몰고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에 밀입국 했다. 지금은 메릴랜드 주의 랭글리 파크 샤핑 센터 근처의 노숙자들에 합류하여 노숙자 생활을 15년째 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라서 제값을 받고 노동을 할 수가 없고 몇 시간짜리 일도 매일 있는 것이 아니다.

쉴 곳이 없어 부서진 트럭의 컨테이너 밑이나 나무 아래에서 지낸다. 제일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목욕을 할 수 없는 것이다. 1주일이 넘게 목욕을 못해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겨 나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 메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목욕을 하고 싶어도 목욕을 할 곳이 없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다.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안면 있는 친지에게 한 번 목욕을 하는데 10달러를 주고 목욕을 했다. 하루 열심히 일해도 30달러를 벌기가 힘드는데.


지난 4월의 어느 날.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던 메길이 병든 몸을 이끌고 함께 지내는 노숙자들을 위해 애절한 바이올린 곡을 들려주었다. 이민자들의 애환을 노래한 ‘돈데 보이(Donde Voy)’였다. 미국으로 돈 벌러 간 사랑하는 남편을 그리워 하며 부르는 아내의 사모곡이었다.
메길의 바이올린 연주가 끝났을 때 메길의 주위에 둘러서서 음악을 듣던 20여 명의 노숙자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목 놓아 울었다.

지난 금요일 내가 그들을 섬기러 갔을 때 메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친구가 내게 메길이 중병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노숙자들을 위로했던 따뜻한 사람, 나의 친구 메길. 매주 일요일에는 3Km나 떨어져 있는 라티노 성당을 성경책을 들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았다.

메길과 함께 했던 정겨운 지난 날들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지난 4월 중순 경에는 내가 참배하는 교회의 십자가 꽃밭에 기름진 흙을 보토하기 위해 메길과 함께 12시 정오부터 시작해서 오후 5시경까지 꽃밭 일을 즐겁게 했었다.
나는 메길이 병약한 것을 알고 있기에 혹시나 일을 하는 도중 과로로 쓰러질까봐 염려스러웠지만 그는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열심히 꽃밭 일을 끝내주었다.

꽃밭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나의 승용차 안에서 삯을 일한 양의 2배로 계산해서 지불해 주었다. 메길은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한국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으며 화기애애한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또 한 가지 가슴 찡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3년 전에 내가 메길을 처음 만났을 때 세계선교회(H.L.M.I)로부터 받은 식품 도네이션 중에 요구르트 5병과 사과 5알이 빵과 함께 들어 있는 선물 한 백을 메길에게 준 적이 있었다. 메길의 반응이 의외였다.

“내가 신선한 사과와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빵 한쪽이나 라면 한 그릇, 아니면 커피 한 컵을 주었거든요. 그것도 감사하긴 하지요.”
나의 친구 메길은 우리들로부터 떠났다. 아마도 그는 늘 소원하고 꿈꾸었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갔을 것이다.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아내도 만날 것이고.
사랑한다, 메길. 안녕….

<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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