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유토피아를 찾아서

2022-09-29 (목)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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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은 신세계에 안착을 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부족함이 없는 대국의 품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으로 이민을 결정했을 것이다. 오래 전에 이민 온 사람들은 비록 몸은 고달파도 그때가 천국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오는 동안 요즘처럼 여러 문제로 살벌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불경기를 확실하게 느꼈을 때가 9.11 이후였다. 그때부터 미국 사람들이 흥청망청 물 쓰듯 돈을 쓰던 습관이 어느새 조금씩 멈추는 듯했다. 그 이후 지갑을 반쯤만 열고 정신을 가다듬고 돈 씀씀이에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듯했고 쇼핑몰 내에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 비즈니스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껏 그 습관을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면이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난한 이민자들의 신세계는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이민을 와서 아무리 피땀을 흘리며 일을 한다 해도 살기 힘들 정도로 물가가 오르고 렌트비가 엄청나게 올라 자칫하면 길거리에 앉을 신세가 된다. 우리 주변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들이 파노라마 영상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노숙자 텐트촌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 사정을 잘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이 몇 십년 전처럼 아직도 미국이 신세계인 줄 알고 위험천만한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너 남미와 중미 육로를 이용해 집단으로 똘똘 뭉쳐 미국을 향한 이민 행렬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남쪽 국경선에는 불법 이민자들과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이민자들의 행렬,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미국 국경을 향해 걷는 캐러밴 행렬을 보면 오죽하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올까 싶다가도 웬만하면 자신들의 나라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 국경 근방에도 임시로 거주하는 난민들의 텐트가 밀집해 있는 실정이다. 이제 꿀이 흐르고 젖이 흐르는 기회의 땅은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이 든다.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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