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선비의 소신과 신사의 처신

2022-09-27 (화)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크게 작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후 고려시대의 왕성했던 불교를 억압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시작된 성리학을 주창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를 지탱했던 힘은 유교이다.
유교의 바탕은 중국의 공자와 맹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왈 맹자왈이란 말은 우리 귀에 너무 익숙하다. 공자왈 맹자왈의 핵심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도리가 무엇이냐를 가르쳐준다. 그 도리를 한데 모은다면 삼강오륜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삼강오륜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도리와 친구들과 어른들에 대한 태도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이 조선시대를 자랑할 수 있는 가장 큰 윤리도덕의 정신적 힘이었다.
이런 정신을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성리학을 따르는 선비였다. 선비는 유교사상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려고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들을 일컫는 존경의 대명사이다. 모든 선비들이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선비라고 불렀을 때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겸비한 오늘날의 인텔리젠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선비들의 자산은 소신이었다. 자신의 감정과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면서 이리 저리 바람에 불려 흔들리는 갈대나 구름같은 삶이 아니라 소나무처럼 대나무처럼 추운 겨울에도 버틸 수 있는 그런 기개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 앞에서도 결코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죽었던 사육신이 바로 그런 소신있게 살았던 선비들의 모델을 보여 주었다. 배가 고파도 물을 마시며 잘 먹었다라고 배를 쓰다듬는 경우라 할지라도 자기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거짓과 부정을 하지 않는 꿋꿋한 태도는 오늘 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선생님들은 많은데 스승이 없고, 사람들은 많은데 위인이 없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지도자가 없는 이 때에 우리가 한번은 선비의 소신을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조선의 선비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이 영국의 신사이다. 영국하면 신사의 나라이다. 신사는 외양도 멋지고 내면도 멋지고 그리고 행동하는 것도 멋져야 한다. 봉건제도하에서 영주나 지주를 부를 때 사용했던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그들의 외모와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는 탁월하게 다른 면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신사라고 언뜻 생각할 때는 긴 모자와 우산, 그리고 반듯한 양복, 조끼, 셔츠, 부츠나 구두를 신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신사라고 부를 때는 단지 외모로 보이는 그런 멋있는 모습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런 마음, 약한 자를 생각하고, 숨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마음을 전달하고 보여 줄 수 있는 양심적이고,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신사는 처신을 잘해야 한다. 옛날 속담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매지 마라든지 오이밭에서는 신발 끈을 매지 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을만한 처신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랑하지 않으며, 욕심내지 않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잘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 주고, 특히 혼자있을 때나 모두가 같이 있을 때나 다를 바가 없이 처신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사인 것이다.

어려운 이 때에 함께 가까이 있고 싶은 선비가 그립기만 하다. 그리고 부러워서 그냥 바라보고 싶은 신사가 기다려진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 삶의 수준과 질은 높아질 것이다.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