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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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먹물들아

2022-09-25 (일) 이동원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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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학문을 갈고 닦아 조리(條理)를 터득하고 사리(事理)를 깨달아 이치에 밝은 사람을 지식인 또는 문인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식인 문인이 사해(四海)에 끼치는 영향과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일륜(日輪)속의 삼족오(三足烏)를 향해 활 시위를 당기는 어리석고 교만한 무기(巫氣)가 많았던 사춘기 때 소설가나 시인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또 하나님이 의심스러워 지루한 성경 구구절절에 밑줄을 그어가며 밤을 새웠고 성철 스님이 아닌 설봉(雪峰)의 제자 운문(雲門) 선사의 산시산 수시수(山是山 水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선문답에 혼을 뺏겨 비구(比丘)가 되고 싶어 복사뼈가 아프도록 면벽을 하는데 눈꺼풀 속에서 팔선녀(八仙女)의 눈흘레(눈맞춤)가 보이고 처음 보는 한문이 두 눈을 가로막아 비구승은커녕 감동젓을 지주 몰래먹는 몽구리도 되지 못했다.

문인이 되기에는 생겨먹은 그릇이 작고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여 이재(異才)가 없는 나는 문인(文人)의 문(門)을 열지 못했고 참참 종교인이 되기에는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이 반복되어 한갓 나무조각인 십자고상 앞에서 갑돌이 갑순이도 쉽게 받는 세례 요한의 물이라는 성령(행 1:5)의 물로 머리를 적시지 못했고 돌덩이 부처 앞에서 머리를 깎지 못했다.
못했고, 못했고, 못해본 거로 사춘기는 끝났다. 그러나 세상 사람 모두 그러하듯 사리(私利)가 아닌 사리(事理)의 이치(理致)인 철(哲)이 들어 시비(是非)를 구별하고 세상의 요철(凹凸)에 민감하다. 왜냐하면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지식인, 문인들의 고명(高名)한 ‘썰’이 때로는 나에게 가시가 되고 항상 미완성인 나는 종교적, 정치적 지적인 목마름에 언제나 보탬을 당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의 보탬이 없으면 비로소 죽음일 것이다. 이제 “커피 마시고 이 쑤시는" 이야기다. 얼마전 한국일보 칼럼에 문인이라는 해제(解題)가 달린 이영묵 씨의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까?"라는 당당(?)하고도 비웃음 섞인 듯한 나에게 물었던(나는 독자이므로) 질문은 충격이었다. 나는 되묻는다. 굶어 죽어가는 어린 아이에게 치즈와 빵을 흔들면서 “아직도 너의 소원은 빵이냐?"하고 묻는다면 옳은 말일까, 아니면 칼이 될까.

또 있다. ‘잠 못 이루는 윤석열 대통령’이란 칼럼에서 정기용씨는 “민생을 직접 단속하는 경찰이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행사할 경우를 상상해보라. 경찰권 견제 정책은 매우 타당성 있는 조치"라고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화국 편을 들었는데 그럼 경찰의 권한을 몰수한 무소불위의 가산국가(家産國家)를 꿈꾸는 듯한 윤석열 정부의 검찰 공화국은 괜찮다는 건가?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58명이 되는 장차관급 인사들이 법적 임기를 구실로 물러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합법적 임기가 왜 무슨 이유로 물러나야만 되는지 명쾌한 설명이 없다.

먹물들의 오평(誤評)이 끼친 해악은 아마도 한국의 고대사(史) 근현대사가 대표적이 될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이 만큼이나 살게 됐다는 외신(外腎), 내신(內腎) 모두 빼준 지적 얼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대한민국은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 달린 샴쌍둥이다. 얼간이 지식인, 종교인들은 북한 머리를 "뎅겅" 미국이 짤라버리면 한쪽 머리 남한은 편히 살 것 같지만 결국은 모두 몰사하게 된다는 현실을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자기의 유명(有名)을 위한 지식의 사리(私利)는 간지(奸智)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 사람들은 학식과 종교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은 듯하다. 사족 하나. 어느 지식인이 나에게 물었다.

“이 선생님은 어느 대학교 나오셨어요?” “아, 네 서울 공대 나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지금 어느 교회에 출석하세요?” “아, 네 락빌에 있는 동원 교회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시구나. 우리 교회는 뜨거운데…. 서울 공대 무슨 과 나오셨어요?”
“아, 예 제가 말한 공대는 서울 공대보다 더 높은 하늘 공(空)자에 큰 대(大)자 공대(空大)의 공(孔)과 나왔습니다.”

나의 실화다. 잠을 못 잔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의 정치 실패로 잠을 못 자는 것이지 야당과 경찰, 국민이 잘못해 잠 못 이루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까?"의 이영묵씨 물음에 나는 되묻는다.

“아직도 우리의 소원은 반통일입니까?". 본인 스스로 바르게 평가하면 비로소 남도 본인을 바르게 평가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이 청명한 아침 갈바람은 조석으로 서늘한데 지식인들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이동원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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