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그레이 줄래?” “뭐라고? 뭘 달라고?” “몽그레이.” “몽그레이?” “그래. 몽그레이.” “몽그레이? 몽그레이가 뭐야?” “어라? 몽그레이를 몰라?” “모르겠는데? 몽그레이가 뭐지?...”
항공기 탑승객에게 제공할 기내식을 직접 만드는 쪽에서 일하는 중년 월남 여성이 내가 일하는 스토어룸(storeroom 창고/저장고)에 와서는 몽그레이가 필요하니까 달라고 했다. 스토어룸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거의 모든 품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몽그레이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몽그레이가 뭔지 알지 못하니까 그녀는 스토어룸의 월남 남자 직원에게 “야, 이 사람 영어 할 줄 알기는 하는 거야?”하고 물었다. 아니 세상에, 내 영어 실력을 놀려? 유려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너 보다는 영어를 잘하는 것 같은데? 몽그레이가 뭔지 모른다고 막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몽그레이를 가지러 온 사람을 마냥 세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옆에 있던 월남 직원이 대신해서 몽그레이를 가져왔다. ‘아니 뭐야, 식빵이잖아… 몽그레이가 식빵이라고? 전혀 들은 바 없는데?...’ 식빵을 건네주면서 포장지를 들여다보았더니 거기 있는 ‘multigrain’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읔… 이게 뭐야!. 여러 가지(multi) 곡식(grain)이라는 뜻의 멀티그레인이 몽그레이라고? 몽그레이가 멀티그레인? 세상에나…’
그랬다. 다양한 곡식을 넣어 만든 식빵이 멀티그레인 식빵인데 이걸 멀티그레인으로 줄여서 말하고 그것을 그녀는 자신에게 들리는 대로 몽그레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그녀가 와서 몽그레이를 찾으면 군소리 없이 멀티그레인을 건네주었다. “이봐, 이거는 몽그레이가 아니라 멀티그레인이라구!”라고 말하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 언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소통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는 더욱 그렇다.
사실 우리말에도 그런 것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야, 문 닫고 들어와. 바람 들어오잖아.” 이 말을 들여다보면 이상하다. 일단 들어온 후에 문을 닫는 것이 맞는데, 문을 먼저 닫은 후에 들어오라고 한다. 문을 닫고 들어오라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이상하지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문 닫고 들어오라’고 말한다.
나중에 마트에서 일할 때에도 영어 때문에 겪은 일이 하나 있다. 손님 중에 그 마트에 정기적으로 오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동차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었다. 계산대 부근에서 계산원을 돕기 위해 손님이 구매한 물건을 비닐봉지에 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쇼핑을 마친 그 손님이 다가와서 말했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러는데 캡 좀 불러주세요.” 머릿속으로 번개같이 많은 생각이 오갔다. 캡(cap)? 모자? 모자를 불러(call)? 쇼핑을 다 했으면 집에 갈 일이지 모자는 왜 찾아? ‘모자를 부른다’는 것에 내가 모르는 무슨 뜻이 있나? 그리고 모자 부르는 것 하고 휴대전화 없는 것 하고는 무슨 관계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되물었다. “캡을 불러 달라고요?” “그렇다니까요. 캡 좀 불러주세요.” “캡?...”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그 손님이 다르게 말했다. “택시 좀 불러 달라고요.” 아하……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캡(cap 모자)이 아니라 캡(cab 택시)… 그러면서 뉴욕시 택시의 별명인 옐로 캡(yellow cab)도 생각났다. 영어에서 p와 b는 전혀 다른 발음이지만 우리는 모두 ㅂ으로 표기하고 발음한다. 그래서 택시(cab) 불러 달라는 부탁을 모자(cap) 불러 달라는 부탁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미국에 도착한 지 몇 주 안 되는 한인 이민자가 있었다. 살림도구를 마련하던 중에 그릇과 접시가 필요해서 사기로 했다. 어디서 사야 하나 생각하다가 생각난 곳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홈 디포(Home Depot)라는 가게였다. 가게 이름이 벌써 ‘집(home)안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이 가득 있는 창고(depot)’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그릇과 접시를 사기 위해 홈 디포에 갔다가 건축자재만 잔뜩 구경하고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퍼스 페리 국립공원의 존 브라운과 관련된 유적지 앞에서 fire engine house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도 잠깐 멈칫했다. 맨 처음에는 fire / engine house로 끊어 읽어서 ‘엔진 하우스가 뭘까? 엔진이 들어있는 집? 이 집에 어떤 엔진이 들어있었던 것이지? 기계실 같은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fire engine / house로 끊으면서 소방차(fire engine)가 있는 집(house) 즉 소방서라고 알 수 있었다.
야드 세일(yard sale)은 뜰’을’ 판매한다는 뜻이 아니다. 집 앞의 뜰’에서’ 뭔가를 판다는 뜻이다. 가라지 세일(garage sale)도 차고’를’ 판매한다는 뜻이 아니고 차고’에서’ 뭔가를 판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처치 세일(church sale)도 교회’를’ 판매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에서’ 뭔가를 판다는 뜻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 때문에 이래 저래 영어가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