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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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롭티, 뭐가 문제죠?

2022-09-08 (목)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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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도착하고 많이 놀랐던 일 중 하나가 여자들의 자유로운 옷차림이었다. 튀는 것보다는 묻히는 걸 선호하는 사상이 짙었던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35여 년을 살아서인지 흔히 말하는 무채색이 시크함의 대명사로 검은색 계열의 색도 아닌 눈에 띄지 않는 색에 단정한 옷차림이 정답인 줄 알았다. 그러다 미국의 알록달록한 형형색색의 색과 이색적인 디자인 자체에 흥미롭다기보다는 과감한 문화의 차이로 일단 큰 심호흡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논란이 되다 유행이 되어버린 레깅스는 20여 년 전부터 미국에선 누구나 즐겨 입었는데 지금처럼 디자인이 화려하진 않았더라도 몸에 쫙 달라붙는 타이즈 형태인 레깅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입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옷이었다. 특히 하체가 튼튼한 여성들이 정.말.로 누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익숙함이라는 것이 그렇다. 미국에서 처음 그런 모습을 본 남편 하는 말이 '여기 사람들은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들인 거 같아'라고 말할 정도로 민망함을 넘어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커다란 몸이 천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몸의 형체가 그대로 보이고, 하필 살색 레깅스를 입어서 살인지 옷인지 구분이 안 되기도 하고, 레깅의 문양이 타투처럼 되어 있어서 온몸이 타투로 도배되어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그야말로 자신 이외의 타인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 걸 봐와서인지 점점 그들의 옷차림에 나 또한, 개의치 않고 익숙함으로 묻히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제는 크롭이다. 점점 옷이 짧아진다 했다.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패션이 조금은 불안했다. 허리를 강조하면서 제멋대로 방대하게 커져 버린 통바지가 그 끝을 모르고 있었다. 바지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면서 복고풍으로 거리를 쓸고 다니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는 동안 다행인지 불행인지 셔츠의 길이는 전과 다르게 짧고 딱 달라붙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허리를 기준으로 아래로는 더 크고 더 넓게, 위로는 더 짧고 더 타이트하게 변모하는 과정에 크롭티가 빠르게 유행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유행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복장의 형태는 시대와 문화의 상황에 기인한다. 크롭은 한복의 저고리에서 기인 된 것일 수도 있고, 비키니 수영복에서 발전된 것일 수도 있고, 유럽의 기원전 이전의 옷에서도 얼핏 본 적 있는 형태에서 발전되었을 수도 있다. 저고리도 유행이 있어서 짧아지면서 섹시미를 강조한 기생 한복 같다는 반열에 올랐다가도 반대로 밑으로 길어지면서 치마는 짧아져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개량 한복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시대를 앞서 나아가는 리더의 행동은, 뒷짐 지며 시대를 옮겨 타는 사람에게는 익숙해지기 이전의 새로운 행동이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률적인 사고 이전의 행동이라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인류의 재탄생을 위한 업적으로 큰 박수를 받는 리더도 있지만, 마돈나나 레이디 가가와 같은 파격적인 행보를 걷는 뮤지션은 호된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이슈로 내몰린 후의 상황은 의외로 빠르게 익숙해지며 독특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이전의 행동이 고루하게 보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한평생 입을 줄만 알았던 교복에서 자율복장 선언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정책이었다. 나이키나 필라 같은 브랜드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해외 시장에 눈을 돌리며 패션업계에 호황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가 대한민국이 컬러나 패션에 눈을 뜬 시작점이니, 아직도 한국은 완전한 자유를 찾기에는 자유 복장에서 벗어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더구나 개인보다는 다수의 의견과 다수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예의고 매너라고 배워왔던 유교 사상이 남아있다.

오히려 미국은 개인적인 시각으로 개성을 존중하고 타인에 대한 시선을 극히 차단하는 사회적 문화가 지배적이라 남의 행동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은 그것이 타인을 위한 존중이라고 교육한다. 자칫 나만 아니면 되지 라는 개인적 사고에 함축되어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고립된 개인주의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주관을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타인의 행동에 관여하는 건 매너가 아니라는 시선이 모든 국민을 개인의 자유로부터 보호 할수 있는 힘을 생기게 만든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익숙해진 문화와 역사의 차이고 보는 관점에 따른 다른 시각의 차이라고 봐야 한다. 크롭티를 입고 출근을 하든 레깅스를 입고 학교를 가든 모든 일은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자기 개성대로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뒷받침에는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무신경이 때로는 정답이 될 수도 있다. 크롭티, 도전해 보자!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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