辯說文辭(변설문사)
2022-08-25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한비자(韓非子)는 유가(儒家)의 순자(荀子)에게서 배웠으나 공자와 맹자의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王道政治) 이론이 봉건 전제국가들이 다투던 당시 전국시대에서는 비현실적이라 보았다. 그는 부국강병의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주장하고 군주의 통치술을 체계화한 법가(法家) 사상의 이론가로 ‘통치공학’의 창시자라 할만하다.
그러나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하고 진나라의 승상이 된 이사(李斯)는 자신 보다 더 뛰어난 한비자를 질투하고 모함하여 독살하였는데, 진시황은 한비자의 이론에 매료되어 천하를 통일하는데 그의 법가 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변설문사(辯說文辭)는 ‘교묘한 말솜씨와 꾸민 말을 입에 올린다’는 뜻으로 비운의 사나이 한비자의 외저설 좌상(外儲設 左上)에 나오는 말이다.
초(楚)나라 왕이 전구(田鳩)에게 “묵자(墨子)는 현명한 학자로 품행도 단정하고 말수가 많은데도 달변이 못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전구는 “옛날에 진백이라는 사람이 그 딸을 진(晉)나라의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화려하게 준비했고 시녀 70명을 함께 딸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진 공자는 같이 온 몸종을 첩으로 삼아 거느리고 정작 신부는 업신 여기게 되었으니 진백이 딸을 시집 잘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진주를 정(鄭)나라 사람에게 팔려는 초나라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목란(木蘭) 상자를 만들어 계수나무와 산초의 향을 피워 스며들게 하였고 주옥을 꿰어 상자에 아로새겼으며 붉은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하고 비취색의 물총새 깃털을 모아서 상자 안에 진주와 함께 넣었지요.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그 화려하게 꾸민 상자만을 사고 정작 보석은 돌려주었으니 이는 상자를 잘 팔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진주를 잘 팔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한비자는 말재간이 좋고 꾸미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혹하여 군주가 신하의 실용 또는 참모습을 보지 못할 수 있음을 일깨웠다. 그는 ‘좋은 약이 입에 쓰지만 먹는 것은 병이 낫기 때문이며, 충고는 귀에 거슬리지만 현명한 군주가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효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므로 신하의 말을 들을 때 말의 화려함보다는 효용성이 있고 없음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취하지 말라’는 뜻의 물취이모(勿取以貌)라는 말도 변설문사와 상통하는 말이다. 순자는 비상편(非相篇)에서 ‘초나라의 승상 손숙오는 촌뜨기로 대머리가 돌출되고 왼쪽 다리가 길었지만 귀한 신분이 되어 초나라를 으뜸으로 만들었다.
주나라의 공신 주공 단(周公 旦)은 마른 나무가 우뚝 선 것처럼 몸이 생겼으며, 상나라의 성인 부열(傅說)은 몸을 세웠을 때 등이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생겼고, 폭군인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키가 크고 장대하며 용모가 뛰어나고 근력과 용기가 뛰어났지만, 자신은 피살되고 나라는 망했으며 후세에 악(惡)을 말하면 반드시 거론하게 되었다’라며 사람의 겉모습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지 말고 내면의 진실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변설문사와 물취이모의 교훈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물론 각 개인이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반드시 기억할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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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