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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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도 어려운 일

2022-08-25 (목) 이규성/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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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웬만한 학부모는 인터넷 등을 통해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녀에게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고 행동은 “이래야 한다”는 등의 조언과 요구를 하는데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요구대로 따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경우, 부모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아이에게 주어지는 조언이나 요구수준의 강도는 높게 마련인데 아이가 부모의 기대나 요구 수준에 부응할 수 있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서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부모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부정적 평가가 내려지면서 부지불식간에 아이에게 낙인(烙印: Labeling)을 찍는다.
“너 바보냐?”

충격적이거나 섭섭한 말은 맘속에 오래 남게 마련이다. 그런 말을 부모나 선생님에게서 들었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씻기 어려운 욕된 이름이나 판정’을 우리는 낙인(烙印)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딱지’가 붙었다느니 혹은 ‘꼬리표’가 붙었다는 등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데 문제는 찍기는 쉬워도 지우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런 까닭에 한번 낙인이 찍히고 나면 대부분의 아이는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낙인이 찍힌 대로’ 행동하려 한다는 것이 바로 1960년대에 베커(Howard S. Becker)가 주장한 ‘낙인이론(theory of Labeling)’이다.

이 이론은 어느 집단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의 말버릇이나 행동 등에 대해 부정적인 표식이나 낙인(烙印)을 찍는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주변인들이 그 행위에 대해 직접 관여한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기억은 대부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후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몰고 간다는 낙인의 특성 때문에 한 번 찍히고 나면 가슴 속에 오래 자리 잡고 있어 아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부모나 선생님이 무너져 버린 아이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줄 수만 있다면 전화위복(a blessing in disguise)의 기쁨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


전화위복의 계기는 인간의 심리적 욕구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다. 이는 생존과 관련된 본능적 욕구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순전히 심리적 욕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청소년들은 부모나 선생님 또는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 때문에 은연중에 그네들이 희망하거나 기대하는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때 부모는 자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고 자녀의 성취에 대해서는 인정(認定)과 격려(激勵)로 이를 칭찬해 주고 관심을 보여 준다면 낙인(烙印) 때문에 받은 마음의 상처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보고 낙인을 찍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지나쳐버리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찍힌 낙인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여 주는 사랑과 인정, 칭찬 등은 낙인으로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명약(名藥)으로 쓰일 수있으며 또한 전화위복의 계기도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밝고 멋지게 자라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규성/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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