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산불

2022-08-11 (목)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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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 화마! 반기지도 않는데 또다시 찾아와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 산불이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인재일 경우도 많다. 불법 불꽃놀이, 캠핑장과 바비큐시 남긴 작은 불씨, 낙후된 PG&E 송전선에서 튄 불꽃 등 부주의와 안일한 대응으로 수천 수만 에이커의 산림이 불타는 대규모 산불로 번지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한 마을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불타서 재만 남은 집터에서 눈물 짓는 사람들의 아픔이 계속 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화마를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은 아주 작다. 결국 모든 걸 다 태우고 끝이 난다.

보통 몇 백년에서 많게는 이천년 동안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세쿼이아 나무도 일부 화마에 희생되고 위험에 처해 있는 상태다. 국립공원 요세미티에서 본 세쿼이아 나무는 쭉쭉 뻗은 큰 키로 신사 같은 자태를 뽐내며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그 나무 한켠에 선 사람들이 작은 존재로 다가오는 웅장함을 한껏 뽐내며 세월을 이겨낸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요세미티 세쿼이아 나무가 울창한 숲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해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진다. 내가 좋아하는 그 나무들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에너지가 솟구쳐 오른다. 그 나무들은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뒤숭숭해도 침묵으로 일관하며 오로지 한 길 하늘만 바라보며 청청하기만 하다.

매년 여름이 오면 겁부터 난다. 어김없이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산불 연기 속에서 지내는 일상도 익숙해진 듯하다. 산불이 발화해 진행되는 곳과 그 주변 지역은 물론이고 서부 산불 연기가 대류권 상부의 제트기류를 타고 동부까지 흘러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이제 산불은 미 전역에서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된 것이다. 북가주 대형산불로 인해 샌프란시스코와 베이지역 하늘이 주황색 화염으로 뒤덮여 한낮에도 빛이 제대로 들지 않은 그런 날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떠나 타주로 떠나는 주민들이 산불 연기를 이주 이유로 꼽기도 했다. 북가주 대기권이 오염없이 맑았다는 10여년 전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진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들이 됐다.

<권순연(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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