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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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侯將相寧有種乎(왕후장상영유종호)

2022-08-03 (수)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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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 진섭세가(陳涉世家)에 나오는 말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죽고 진나라가 혼란해졌을 때 머슴 출신의 진섭은 조정의 명령으로 다른 사람들과 행렬에 편제되어 소집되었는데 폭우로 길이 막혀 기한내에 목적지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기한을 어기면 법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게 되어 있어 진섭은 어차피 죽을 바에야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명분으로 오광과 함께 난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그는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는 이 말로 자신처럼 천한 신분인 부하들의 마음을 흔들어 반란을 이끌었다.

순자(荀子)는 영욕편(榮辱篇)에서 사람이 배가 고프면 먹으려 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지내려 하고, 피곤하면 쉬려 하고,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운 것을 싫어하며,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는 것은 누구나 같다고 말함으로써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일깨웠다.
신분 차별과 착취가 심했던 고려시대 초, 공주 명학소(鳴鶴所)를 중심으로 망이와 망소이의 난이 일어났고, 1198년에는 최충헌의 노비 만적(萬積)이 진섭의 ‘왕후장상영유종호’라는 말을 인용, 노비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조선시대는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 양인과 노비 사이에 낳은 자식은 어미를 따라 노비가 됨)과 일천즉천법(一賤即賤法, 부모 한쪽이 노비이면 자식은 노비)에 따라 천민의 숫자가 급증하였다. 제(齊)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이 각유소장(各有所長), 즉 사람마다 장점이나 장기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조선시대 하층 계급의 사람 중에도 문(文), 무(武), 기(技), 예(藝) 등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은 힘든 노역에 시달렸고,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고,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길도 막혀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으며 나라 발전도 정체되었다.


그러나 이를 뛰어 넘은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시대 나주의 노비 출신 정충신은 임진왜란 때 권율 휘하에서 종군하여 공을 세웠으며, 장영실은 동래현 관기 출신의 모친에서 태어난 노비였으나 태종과 세종때에 과학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재상집의 노비였으나 스스로 글을 깨우친 서기(徐起)는 뛰어난 글재주로 면천되어 이름난 선비가 되었고, 정씨 성을 가진 나무꾼 정초부(鄭樵夫)는 사대부 여춘영의 노비였으나 시를 잘 써서 사대부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정초부는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라는 뜻의 과객(過客)이라는 시에서 ‘강가에 있는 나무꾼의 집/나그네를 맞는 여관이 아니라오/내 성명을 알고 싶거든/광릉에 가서 꽃에게나 물어보소’라며 비천한 출신의 서글픔을 표현했는데 이 시의 마지막 두 구절은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그의 사후 여춘영은 ‘이런 재능을 지닌 자를 변변찮은 신세로 살게 했으니 세상은 인재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며 신분의 제한으로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게 산 그를 추모하였다. 정초부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그의 시를 좋아했던 사대부 문인들에 의해 그의 시는 초부유고(樵夫遺稿)라는 책과 다산시령(茶山詩零)에 실려 전해온다.
조선이 신분의 귀천 없이 모든 백성의 재능을 살리는 열린 마음의 나라였다면 일찍이 이웃 나라들을 능가하는 위대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gosasunguh@gmail.com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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