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닐때 였으니까 1960년대 중반쯤 어느날, 어머니가 오일장에 나가셨다가 비녀를 풀고 쪽진머리를 자른뒤 파마머리를 하고 돌아오셨다. 어머니에게는 본시 동네 고샅 나다니는 것조차 사치였다. 오로지 집과 논밭만 오갔다. 그러니 북장구 치고 노는 곳에 간다는 것은 어머니 세상에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어머니가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가끔씩이지만 식구들 식사시간이 지나도록 동네 잔치집에서 오래 머물기도 하였다. 논두렁에 앉아 아버지와 막걸리도 한잔씩 하셨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을 읽기 훨씬 이전의 일로 어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엄마의 신상에 아주 중대한 변화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일종의 리비도(libido: 성욕본능)이자, 조금 더 들어가자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Oedipus complex)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즉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는 남자아이, 당시의 엄마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여성이 아닌 엄마, 아내, 주부의 역할에만 충실토록 했던 것이다. 먹고 입는 것도 항상 나중이어야 했고, 집안의 궂은 일은 당연히 엄마몫이어야 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노는 것은 고사하고 쉬는 일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다 못해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듯 죄의식까지 가진 듯 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걸 보고 자란 필자 세대들도 놀이문화에는 대체로 서툴고 보수적이다.
하루가 7번이면 1주일이 되고, 1주일이 4번 지나면 1달을 결산한다. 그 한달이 3번이면 분기요, 그런 분기가 2번이면 반기다. 또 2번의 반기면 1년을 결산한다.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모여 면을 이루고, 면이 쌓이면 작품이 되는 이치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금쪽같이 보내야 했다. 그 사이사이에 생기는 경조사도 빠지면 조직의 쓴맛이 뒤따른다. 휴가라고 정해져 있지만 그걸 제대로 쓸려면 각오(?)를 하거나, 반차만 쓰더래도 눈치가 사납다.
이것은 20년전 떠나오기 직전까지 한국내 직장인들의 일상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반드시 앞서나간다는 보장도 없다. 어느날, 같은 사내 인접지역 모 본부장은 산하 지점장 25명과 함께 울릉도까지 3박4일 여행을 떠났단다. 월말 마감이 임박해 오자 오히려 다른 본부에서 걱정으로 숨죽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본부장은 태연자약이다.
결과는 오히려 더 나았다. 25명이 함께한 시간과 공감, 추억과 감동은 보너스로 남는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타 본부와는 멤버간의 깊이가 다르다.
민주평통 회장을 맡아 전반 1년이 다 되어 간다. 마음속으로 혼자 결산을 해보는 시기다. 그리고 후반 1년을 준비해야 한다. 나름 ‘임무와 역할과 사명’이 몸에 배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순간순간을 소홀히 했던 일만 스쳐간다. 사람과 숫자에 대한 욕심(?) 그리고 좌절, 상받을 일은 못하더라도 손가락질은 받지 말자면서 스태프, 임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직무일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부지런하면 꼴찌는 안한다.’ 누가 채점하고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 그게 편하다. 영락없는 우리 어머니다. 누군가와 격의없는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도산 안창호) 이런 청년사상을 바탕에 두고 시작한 민주 평통 워싱턴의 전반 1년이 지나가는 즈음이다. 이번에는 원로 자문위원(고문) 10여분들과 MT를 다녀왔다.
각자 다른 출신, 각자의 방식과 문화로 건너 온 삶들이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은 꽃, 국화같은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의 주제, 눈빛, 노래, 생각, 배려, 잠자는 습관까지, 어쩌면 그날 밤에는 꿈마저도 같았을지도 모른다. 만남, 이산가족, 고향, 사연, 통일, 가볍게 스쳐지나갔던 이야기들, 오히려 말없이 마음과 마음으로 웃고 돌아 온 1박2일이 무척이나 짧고 아쉽다. ‘휴가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걸 퇴직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같은 일도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단(分斷)은 한민족에게는 만악(萬惡)의 근원이요, 통일은 민족의 숙원이다. 통일은 숭고한 것, 오늘도 통일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는 수많은 국내외 기관과 단체도 이를 지속하려면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하자.’ 라고 하면 어떨까. 남의 탓만으로 허송하느니 내길을 꾸준히 가려면 그러는 게 당연하다.
<
강창구 / 위싱턴 민주평통회장,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