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들고 한인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갔다. 거의 15년 전의 얘기다.
사장과 부사장(사장의 배우자)이 간단한 인터뷰를 했고 작은 방으로 안내한 후 뉴스 원고와 녹음기를 주면서 녹음을 해오라고 했다. 녹음을 해서 건네주었더니 잠시 후 와서는 녹음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면서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며칠 후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하던 그날 지원자가 한 사람 더 있었기에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지원했는데 선택되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출근 첫날에 3개월의 프로베이션(probation) 설명을 들었다. 프로베이션은 보통 ‘수습’으로 번역하지만 시험적으로 채용한다는 뜻의 ‘시용’이라는 표현이 더 와닿는다. 지원자의 업무 적합성을 알아보는 절차다. 일단 고용관계가 성립되면 해고도 적법 절차를 거쳐야 하고 사직도 일정 기간 전에 통지해야 하지만 프로베이션 기간 중에는 그런 제약 없이 어느 때나 할 수 있다.
그 회사는 우리말로 라디오 방송을 하기에 회계 담당 여직원 한 사람 빼고는 모두 한인이었다. 그래서 언어소통의 불편함은 없었다.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의 광고영업이므로 고객도 모두 한인이었다. 다행히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부담은 줄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다. 일찍부터 미국은 직장이 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했다. 노동을 제공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것이 직장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직장을 단순한 밥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 내에는, 적어도 IMF 이전까지는, 정과 의리라는 것이 있었고 정서적 유대감도 중요했다. 그런 성향의 경영진이 미국의 한인 회사에 있었다.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 발견되는 ‘한국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니고’의 현상이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과 미국식 중에서 ‘갑’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현상이다.
퇴근 직전에 시작되는 개인 면담이 가장 불편했다. 경영진은 신입의 활동 내역도 알고 싶고 회사 내 업무 적응 정도나 조직과의 화합 정도 같은 것이 궁금할 것이다. 문제는 그 개인 면담이 퇴근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면 퇴근 시각에서 20분, 30분 정도 넘기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도 사내 체육대회, 직원 등반대회, 직무 관련 교육을 일요일에 실시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었다. 그런 것들은 회사 업무의 연장이기에 휴일인 일요일에 실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땅에서 다시 비슷한 일을 겪으니 짜증났다.
직무 이외의 업무를 하는 것도 부담되었다. 광고 영업직으로 입사했는데 방송기기 작동법을 가르치더니 부스에 들어가서 방송 송출을 하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청취자를 떠올린 방송 쌩초보는 실수하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가 컸다.
라디오 방송국 안에는 성우가 없었다. 광고 목소리는 아나운서, 기자, 광고 담당자, 행정직원 등 방송국 모든 인적 자원이 동원되었다. 성우가 아닌 이들이 고용 계약에 없는 광고 녹음의 가외 업무를 하는데 대가가 없다는 점은 의아했다. 입사할 때 목소리 테스트한 이유가 이해되었다. 여차하면 광고 영업직도 뉴스 방송에 투입하겠다는 얘기였다. 아닌 게 아니라 행정직으로 입사한 사람이 뉴스 방송을 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프로베이션 기간 마지막 날 퇴근 직전에 자신들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직원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 자리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고 영업 현장에서 업주를 만날 때 “어? 사람이 또 바뀌었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직원 교체가 잦다는 얘기인데 석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으니 그 업주는 광고 영업차 방문한 새로운 담당자에게 그 얘기를 또 하게 된다.
그 라디오 방송국 근무 중 인상 깊었던 일은, 당시의 경영진이 방송사를 인수하기 전부터 근무하던, 회계 담당 미국 중년 여성과의 대화였다.
일을 하다 보면 경영진과 생각이 달라서 의견 대립이 있기도 한다. 그런데 그 회계담당 여직원이 얘기했다. “난 말이야, 경영진이 싫어하는 얘기는 하지 않아.” 아무리 맞는 얘기일지라도 경영진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아… 미국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라디오 방송국을 나온 후 그 자리를 소개해주었던 박 선생님께 알려드렸다. 이번에는 어느 곳에 지원할 것인가 알아보던 중에 박 선생님께서 다시 연락을 해오셨다. 덜레스 공항 부근의 기내식 만드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니까 가보라는 것이었다. 무슨 회사인지 거기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설명을 듣고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취업을 위해 공항 부근의 그 회사를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