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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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순응하며

2022-07-18 (월)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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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산책 도중에 한껏 멋있어 보이는 선글라스를 쓴 노부부를 만났다. 멋져 보인다고 얘기를 해주었더니 특히 부인께서 어깨를 으쓱하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산책이 끝나가고 그들은 막 시작, 서로가 멀어져갔다. 뒤돌아보니 멀리 산등성을 손을 잡고 넘으려는 찰라인데 그 모습이 참으로 나만 보기가 너무 아까워 망원 렌즈로 찰깍했다.
집에 와 집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동행”이 이런 거겠지? 하며 사진을 분석해보니 좀 이상한 듯하다. 노인장은 허리가 구부정하고, 노부인(?)은 키도 훤칠하지만 허리 포함 전체 모습이 꼿꼿하다.

뒤에서만 본 것으로 판단한다면 마치 젊은 연인? 아니면 딸과 같은 사이인 것처럼 충분히 느껴질 만하다. 아름다운 동행이란 말을 수정해야 되는 건 아닌지?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노부인의 허리가 좀 구부정했으면 어떠했을까? 아니면 노인장 자신이 좀 더 건강에 유의해 허리가 꾸부러지지 않도록 했으면 노부인께서 오해를 받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괜히 남의 일이지만 아쉽고 안 된 생각이 들었다.
집에 거의 도달했을 때 워커(Walker)에 의지해 걷는 노인장 옆에 노부인이 시중(?)들며 옆에서 걸어가는 모습이야말로 비록 선글라스를 끼진 않았어도 정말로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

나이 들어 얼굴에 주름이 잡힘은 마치 나무가 오래될수록 나이테가 겹겹이 쌓이듯 인생의 훈장이 아니겠는가.
또한 피아니스트의 고사리 같은 아름다운 손도 좋지만 예전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편을 위해 미 연방 대법원 판사직을 사임한 샌드라 오코너(Sandra O'Connor) 그분의 손등은 마치 농사꾼(실제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의 손등처럼 단단하고 억센 생활의, 인생의 훈장처럼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던 생각이 난다.

세월이 흘러 몸도 마음도 젊었을 적만 못함을 어찌 탓하고만 있을건가. 현명하게 순응함이 옳을 게다.
하지만 하향평준화보다 상향평준화 함이 옳은 처방이렷다. 평소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여 남들의 오해를 사는 한이 있더라도 활기차고 허리 꼿꼿한 노부부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 부부는 오늘도 남아도는 시간을 소모해가며 산책길에 나선다.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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