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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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의‘미국 들여다보기’(45)

2022-07-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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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후 취업, 이력서에서 시작하다

15여 년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한 후 취업을 하기로 결심한 즈음이다. 사실 취업 결심 전에 가장 많은 권유를 받은 것은 패밀리 비즈니스(family business)였다. 40대 중후반의 부부에 고등학생인 딸과 아들의 4인조라면 패밀리 비즈니스에 최적이라는 것이다.
주위의 많은 권유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사업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주목한 것은 패밀리 비즈니스를 권유한 사람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는 점이다. 부부가 작은 사업장을 뼈 빠져라 운영하면서도 자녀는 그 사업장에 들이지 않고 공부를 시켰다.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패밀리 비즈니스를 권유하는 것이 좀 의아했다.

취업 결심 후 맨 처음 한 것은 신문광고를 살피는 것이었다. 언어소통에 자신이 없기에 일단 한글로 발행되는 신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글 신문의 광고 중에서도 사무직 위주로 찾다 보니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자동차 메카닉은 아는 것이 없으니 못하고, 사이딩이나 마루는 보나 마나 체력이 안될 것 같고, 슬쩍 알아보았더니 세탁소 근무도 만만치 않은 체력이 필요하고… 한국에서 사무실 근무만 해온 40대 중반의 남자는 뭐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러다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 방송국의 모집광고를 보았다. ‘아… 미국의 소리… 1960년대 아침 시간에 라디오에서 방송되던 그…’ 용감하게도(라고 쓰고 ‘무모하게도’라고 읽는다) 모집광고에 제시된 조건에 맞추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이메일로 보냈다. 당연히 합격하지 못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사회를 몰라도 그렇게 모를 수 없던 그 시절에 취업하겠다고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쓴 것이다.


취업을 모색하다 보니 버지니아한인회에서 운영하던 한사랑종합학교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직업교육 수강을 고려하고 있던 중 ‘취업을 위한 이력서 작성과 인터뷰 대비’ 강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취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상황이라 수강신청을 했다. 학기마다 있던 강좌는 아니었고 미군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박선생님이 특강 형식으로 지도하셨는데 중년 여성의 씩씩함으로 지도해 주셨다. 그 강좌는 영어 이력서를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영어 인터뷰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등을 실전적으로 알려주는 강좌였다. 그 강좌를 들으면서 ‘미국의 소리’에 제출했던 이력서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게 되었다. 이력서에서 기재하는 사항들의 시간 순서를 다르게 적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력서상 이력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즉 현재의 나를 소개할 때에 머나먼 과거에서 출발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적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력의 경우 졸업한 고등학교를 맨 처음에 적고 그다음 줄에 대학교에 관한 사항을 적고 다음 줄에 대학원에 관한 사항을 적어 나간다.
그런데 박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미국에서의 이력서는 현재의 상태를 맨 처음을 적고 그 다음 줄에 그 직전 상태를 적는 순서로 나가는 것이었다. 즉 현재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적어 나가는 것이었다. 한국의 이력서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미국 이력서는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이력을 기재하는 것이었다.

미국식 이력서 작성법을 배우면서 ‘퍽 유용한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채용 후 바로 실무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직전에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가 가장 관심 가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 지원자를 평가하는 방식의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15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에서도 미국 이력서처럼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흐름을 적는 것 같다.
앞에서 얘기했던 ‘미국의 소리’에 제출했던 이력서는 그 옛날의 한국식 이력서 즉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이력서였으니 채용 담당자는 이력서 한 장만으로 ‘이 지원자는 미국에 대해 잘 모르는군…’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나 부족한 지원자를 채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불합격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이력서 작성법과 인터뷰 대응방법을 배운 후 박선생님의 첨삭지도를 받으면서 이력서를 만들어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박선생님이 연락을 해왔다. 자신이 아는 사람이 지역의 한인 방송국 광고영업직을 그만두어서 그 자리가 비었으니 당장 이력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방송국? 광고영업? 모두가 낯선 분야여서 망설였지만 박 선생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에 일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서 방문했다. 미국에서의 두 번째 취업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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