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크리스 웨이츠 감독이 제작한 영화 ‘더 나은 삶 (the Better Life)’ 에는 도시빈민 라티노들의 슬픈 자화상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출신의 라티노들이 자기 조국을 등지고 미국에 밀입국하면서 겪는 고통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미국에서의 눈물겨운 삶과 회한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서글픔으로 녹아 흐른다.
영화의 배경은 L.A 다. 불체자 까를로스는 그의 외아들 루이스와 갱들이 우굴거리는 L.A 우범지역에서 함께 거주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식구들을 저버리고 야반도주한 야속한 아내, 막노동 하면서 가사일과 반항심 가득한 사춘기 아들 양육까지 고스란히 두 어깨에 짊어진 힘겨운 삶이 계속된다. 까를로스의 직업은 조경사다. 때로 수십미터 높이의 야자수 꼭대기까지 올라가 가지를 솎아내는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날 발생한 도난사건이 추방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돈을 빌려 가까스로 구입한 중고 픽업 트럭과 조경 연장들을 바라보면서 까를로스는 자영업 꿈에 부푼다. 까마득히 높은 야자수 꼭대기에 올라가 연장을 쥐려는 순간, 인력시장에서 일당을 주고 불러 온 ‘아주단떼’ (ayudante, 헬퍼) 산티아고가 차와 연장을 송두리채 챙겨 달아났다. 수소문 끝에 가까스로 좀도둑을 잡았지만 차량은 벌써 밀매 조직에 헐값에 팔린 후였다. 장물 차량들이 야적된 담을 은밀히 넘어 자신의 차를 끌고나오던 중, 경찰의 불심검문에 붙잡히고 만다. ICE (이민세관 단속국)에 넘겨진 후 추방 재판을 받고 멕시코로 강제 추방 조치를 받는 아비 까를로스. 그리고 낯선 땅에 홀로 남겨질 철부지 아들과의 눈물겨운 이별이 감옥에서 이뤄진다.
아비의 마지막 유언같은 당부가 아들의 가슴에 송곳처럼 각인된다. ‘노 떼 우나스 아 우나 빤디야’ (no te unas a una pandilla 갱단에 절대로 가입하지 마라), 아무리 위협하고 유혹한다고 해도 불가근(不可近)하라. ‘눈까 떼 드로게스’ (nunca te drogues 절대로 마약을 하지마라) . 일확천금을 얻으려 마약 딜러가 되려하지 마라, 파멸의 지름길이니.. 눈물로 호소하는 아비의 간곡한 메시지가 아들에게 남겨진다. 마침내 호송차에 실려 국경으로 떠나는 아비를 보며 울부짖는 아들의 탄식소리는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하늘이 맺어준 혈육간, 이성간에 맺어준 인연을 인위적으로 끊을 수 없다. 차마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붙잡아 보려 눈물로 부르는 노래는 차라리 통곡 같은 불인별곡이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보더 카르텔 코요테 마피아에게 비싼 수수료를 지불하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던 멕시코와 중미 출신의 젊은 라티노들 오십여명이 텍사스 주 오스틴 시에서 질식사 한채 발견되어 미국 사회와 라티노들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연일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때,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던 컨테이너 실내는 화씨 170도를 넘는 찜통같았고, 마실 물 조차 고갈된 그곳에 짐짝처럼 실려있던 100여명의 아메리칸 드리머들은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스러지고 말았다.
‘더 나은 삶’은 소유의 많고 적음, 지위가 높고 낮음에 있지 않다. 도리어, 주어진 환경에서 비록 가난하더라도 정직한 삶, 깨끗한 삶, 신의를 지키는 삶, 나보다 못한 남에게 덕을 끼치며 살때 비로서 경험할 수 있는 보화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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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억 /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