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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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보고 싶은 사람

2022-06-19 (일) 백 광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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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씨. 6월 1일 당신이 한국일보에 올린 글 '봄날은 간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또 여러 글을 읽어 오면서 고운 마음결과 산을 닮은 넉넉한 모습에 만나 뵙고 싶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뒤뜰의 나뭇가지에서 짖어대는 새들과 벗하고 싶어 예쁜 새집을 만들어서 모이도 듬뿍 깔아 놓았으나 2주일이 지나도 한 마리도 찾아오지 않고 삐쩍 마른 어미 여우와 포동포동한 새끼 여우가 언덕에 누워 오손도손 속삭이는 봄날의 나른한 오후입니다. 아마도 다시는 못 가볼 고향 이야기를 나누었겠지요.
어제는 한국의 KBS 방송국의 ‘열린 음악회’를 TV에서 봤습니다. 흰 백발의, 왕년의 샹송 여자 가수가 나지막한 저음으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부르는데 내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져 놓은 것 같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이민생활 50년,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단으로 궁상맞지 않은 노후, 당당한 노후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만 세월의 무게가 힘겨워지고 노파심으로 잔소리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J 씨. 만약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새에게도 여우에게도 못한 이야기와 언젠가는, 혹은 멀지 않은 어느 날, 우리가 떠나야 할 이 정든 페어팩스 우리 동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저는 50년을 이 동네에서만 살아서 내 고국의 고향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풍진 세상, 정글의 법칙 같은 매정한 이야기는 입에 담기도 싫고 앞으로 세세연연 오랫동안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2세, 3세들의 삶의 모습을 또 꼭 접하고 살아가야 할 모습을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촌티 나고 삼류라고 냉대받던 대중가요가 세련되게 BTS라는 세계적 명품이 되어 세계의 황궁 백악관의 어전 잔치에 초대된 ‘성은이 망극한’ 역사가 이루어진 어제 오늘의 이 현장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 한인들이 가슴 열고 들어야 할 부르짖음은 “너희가 일어나 환호하고 춤추지 않으면 땅 밑의 바위돌이 뛰쳐나와 환호하리라.”입니다.
BTS를 보면서 떠오르는 쓸쓸한 추억, 한국의 국민가수 이미자 씨의 50주년 기념 콘서트에 음대 성악 교수가 협찬하면서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따돌림과 싸늘한 시선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은 서재필 박사께서 일제강점기 독립신문에 남긴 가슴을 찢는 처절한 절규 ‘더러운 민족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J 씨.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문화의 한류, 그 밑바닥에 깔린 오랜 세월의 우리 민족의 정서 자유와 정…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뒤로 미루고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노부부의 바람이 있다면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으로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백발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인생의 면류관입니다.

<백 광 알렉산드리아,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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