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남편 나무’가 있다
2022-06-13 (월)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10여 년 전 일이다. 시부모님이 미국에 오셔서 남편 생일에 맞추어 나무 한 그루를 심고자 하셨다. 내가 고른 키가 크고 멋진 나무는 마다하시고 당신이 고르신 키가 자그마한 나무를 사기를 원하셨다. 우리 집에 맞는 사이즈와 집 주변에 있는 나무의 키를 고려해야 하고 그것도 우리 집 입구 가장 중앙에 놓일 거라 정말 근사한 나무 그리고 앞으로 자랄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설득에 설득을 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중앙 자리에 맞지 않은 나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다음 계절 즈음에 어머님이 고르신 남편 나무보다 훨씬 크고 멋진 나무를 중앙 자리에 심고 뽑힌 남편 나무는 집과 가까운 현관 쪽으로 자리로 옮겨 심었다. 옳거니! 드디어 마당 중앙에 키 큰 나무가 중심을 잡고 집 앞에는 자그마한 남편 나무가 딱 놓이니 이제야 균형이 맞추어지는 듯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에 심었던 나무의 뿌리가 썩은 채 그대로 있어서인지 그 자리에 심은 키 큰 나무가 시름시름 마르기 시작했다. 원래 나무를 이장하면 큰일이 난다는 옛말이 갑자기 생각난 건 그 키 큰 나무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장한 남편 나무 때문이었다. 생명체에 사람 이름을 붙여놓으니 잘되면 좋은 일이 되지만 잘못하면 괜스레 나쁜 생각으로 점쳐지니 그게 문제였다.
결국,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산 키 큰 나무는 작은 그루터기만을 남기고 없어지는 불운을 남겼다. 하지만 남편 나무는 이상하리만치 잘 자라서 새싹이 나는 봄부터 낙엽이 지는 가을까지 집안 그늘막을 책임지고 있는 든든한 나무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커져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행운까지를 막는 거 같아 처음엔 가지치기만 조금 하려다 보니 가지 하나 남지 않은 토막 난 몽당연필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잘려나간 것 같다며 남편은 울상이 되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사업을 하는 사람의 나무를 잘랐다는 죄책감에 봄이 오는 날까지 마음이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무의 생명력이 강한 건지 남편의 에너지가 나무에까지 뻗쳐서인지 어린아이가 몽땅하게 그린 것 같은 뭉툭하고 토막 난 나뭇가지에서 무언가가 움트는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엔 아주 조금씩 손톱 자라듯 보일 듯 말 듯 반듯하게 잘려나간 표면을 간지럽히더니 봄의 속도를 따라가려는 듯 급속도로 나뭇가지들이 쭉쭉 길어졌다. 굵고 커다란 원통 나무에서 어울리지도 않은 작은 잔가지들이 삐죽 어지럽히는 모양새라 그리 이쁘진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자연은 누구의 간섭도 아랑곳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그저 조용히 돌아가는 세상의 순리처럼 보였다. 숨죽여 있던 밑동 구리도 겨우내 싸고 있던 거무스름한 표면이 떨어져 나가면서 하얗고 뽀얀 아기 속살을 드러냈다.
길어지는 나뭇가지들은 봄의 향연과 발맞추어 활처럼 가느다랗고 길어지며 휘어져 저마다 얽히고 설켜 어지러워 보였지만 어디 한 군데 부딪침 없이 거미줄처럼 질서 정연하게 자연의 이치로 그 자리에 자기의 자리를 만들어 갔다. 잘린 자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빽빽하게 들어섰고 활을 당겨도 부러질 거 같지 않은 강함으로 경쟁을 하는 듯했다. 그러다 연하디 연한 나뭇잎이 나오는 걸 깜빡한 사이에 연한 봄빛으로 집 앞을 가득 수놓고 말았다.
어머나 깜짝이야! 라는 표현이 딱 맞을 만큼 급속도로 나 보란 듯이 연한 연둣빛 물감이 흑 뿌려져 온 나무에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지 작고 연한 아기 잎들에게 일일이 입맞춤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진하고 벅찬 자연의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키 작고 못난 나무를 볼 때마다 흉물처럼 기이하게 서 있는 나무가 혹여나 사업을 하는 일마다 잘려나간 가지들의 방해로 잘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남편 나무가 알아봐 준 것 같아 고마웠다.
남편 나무의 운명은 처음 내가 그렇게 투덜거렸던 나무를 어머님의 고집으로 고르지 않았다면 우리 집에 있을 나무가 아니었고 그 나무를 이장하지 않고 중앙 자리에 심은 그대로 두었다면 키가 크지도 못하고 그루터기가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너무 크다며 민둥 머리로 만들어 버려 영양분이 없어 크지 못해 그저 우리 집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뿌리째 뽑히는 운명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겠다.
자연은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어린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으셨던 시어머니의 속내를 감안해서 그리도 크고 멋지게 자라는 나무가 되었는지 아니면 팔과 다리가 잘려나간 듯한 모습이라 행여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그렇게도 탐스러운 나뭇잎과 꽃을 피워냈는지 모르겠다. 자연은 그저 말없이 인간의 뜻에 따라 순순히 마음을 내어준다. 이 자리다 저 자리다 따지지 않고 심긴 그 자리가 내 자리로 나의 뿌리를 내리면 그뿐이다. 남편 나무가 고마운 이유다.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