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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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들의 졸업식

2022-06-12 (일) 유설자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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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초록물로 넘실대는 계절에 손주 졸업식에 가는 날이다. 대학 2년생인 손녀가 운전하는 차에 동승, 차분하게 장장 4시간 넘게 운전해가는 대견함을 보면서,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큰 딸이 첫 아이를 낳던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달려가 앙증맞은 얼굴과 고사리같은 손가락을 만지던 그 날이 생각난다. 22년 전 내가 57살 되던 해에 나에게 처음으로 할머니라는 이름을 붙여준 첫 손녀.

그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초, 중, 고교를 거쳐 대학 졸업이라니 감개무량하다. 졸업식은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해서 이틀 간 거행된다. 졸업식 하는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텔을 정하고 딸, 사위,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들이 모처럼 한 곳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함께 식사하며 오붓한 가족 간의 담소를 나누는 복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다. 잔뜩 흐린 날씨에 소나기가 온다는 예보다.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 많은 축하객들이 우비, 우산을 쓰고 졸업식 하는 동안만 비가 멎기만을 기대했는데…. 축복의 비는 끝이지 않는다.

넓은 축구장(Lane Stadium) 안에 4천여 명이 넘는 졸업생들이 우비들을 받쳐 입고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젊은 열기에 환성을 지르는 젊음들이 졸업식장을 뜨겁게 달군다. 그 다음날 단단히 비에 대응하는 옷차림에 신경을 썼는데 예상외로 점점 검은 구름이 걷히며 파란 하늘에 태양이 뜨겁게 내려쬐는 무더움에 모두들 땀 범벅이가 되는 별스런 날씨였지만, 호명하는 졸업생 하나하나의 이름은 쩌렁쩌렁 졸업식장을 뒤흔들고 졸업장 받는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모두들 몸살을 냈다.


졸업식 후 정원에서 삼삼오오 축하객들에 둘러싸인 분홍 꽃물이 든 사각모자 쓴 손녀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큰 손녀와 2명의 룸메이트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선 그들의 부모님들이 졸업 축하 파티를 위해 한창 준비가 바쁘다. 갖가지 음식들, 붉은 와인과 갖가지 주스, 칵테일, 대학 로고가 박힌 쿠키와 예쁜 케익이 사랑하는 딸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엄마들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들음을 볼 수 있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뒤뜰에 마련한 넓은 텐트, 눈부신 하얀 테이블 위에 장식한 예쁜 장식품들은 졸업생 딸을 축하하는 엄마들의 솜씨를 한껏 발휘한 것이리라.

2주 후 작은 딸의 첫 아들(손자) 고교 졸업식 날 참석하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로 달려가는 그날도 비가 엄청 내리는 날, 그 비는 분명 축복의 비라 장담하는 남편 운전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담한 교회에서 열린 162명의 조촐한 졸업식. 손자는 5살부터 테니스 레슨을 받고 즐기더니 많은 대회에 참가해 활동하면서 이번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대표 싱글 챔피언 트로피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속으로 받는 영광을 가졌다. 특별한 상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의 환호와 박수 그리고 온 가족의 축하의 박수는 끊이지 않았다.

나의 4명의 손자, 4명의 손녀. 점점 씩씩하고 정겨운 도레미파솔라시도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여덟 명의 손주들이다. 그들 부모님들의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키워낸 대학생이 다섯 명, 내년부터는 해마다 대학생으로 승격, 그들의 뒷바라지하는 나의 두 딸과 사위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 하지 않는가. 앞으로 그들이 꿈꾸는 건설적인 목적을 활짝 펼치며 사회의 큰 일꾼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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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자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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