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 역사나 고비마다 세대교체에 관한 갖가지 내력이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세대교체의 수령을 헤매면서도 왠지 무심하게 넘어가는 분위기여서 매우 의아한 느낌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학계 문화계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낡은 것과 늙은 것의 분별도 없이 물리적 연령 판단을 세대교체 기준으로 하는 진행은 불합리하고 모순이란 지탄을 받는다.
21세기에 들어서 현대 사회의 인간 수명은 100세 시대를 구가한다. 의료과학 발달, 건강관리 진보, 질 좋은 영양섭취 등으로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체력에 관한 한 젊고 늙음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단순 나이만 들춰내서 늙었으니 물러나라는 식의 일방적 세대 교체론은 강압이며 비논리적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교훈이 있다. 옛 것을 존중하고 선배들의 지혜와 경륜이 후손에게 매끄럽게 전수하는 사회가 정상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틈엔가 세대교체론 광풍이 한순간 몰아치더니 노년층의 목소리가 대폭 질식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OECD 20여 개 국가들 가운데 노인 빈곤율,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번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도 70대 이상의 출마자는 거의 전무한 형편이었다. 집단 ‘토사구팽(兎死狗烹)’ 징조가 아닌가.
우리 한국사회의 노인에 대한 관념과 철학을 바로 세워야 한다. 노인들이 단순히 보호대상이나 연금 수혜, 귀찮은 존재, 부담스러운 과제물로만 취급하는 것 같아 크게 걱정된다. 노인들에게는 저력이 남아 있고 오랜 삶에서 습득한 지혜와 경험 능력이 간직돼 있다. 그들은 불굴의 인내와 열정, 야망으로 오래 살아남아 노인이 된 것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노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세대교체론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주인공 산티아고를 통하여 매우 격렬하게 집념과 야망,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갈망을 추구하는 한 노인의 도전 욕구를 묘사했다.
6.25 때 우리를 도운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은퇴하며 남긴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는 유언은 지금도 늙은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80년대 말 민정당 대표였던 원조 윤길중 선생은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 대표에게 정립(鼎立) 황금분할론을 제시하여 거뜬히 갈등을 해결한 실화가 있다. 정립이란 삼각(3발) 받침대를 의미한다. 세 당이 협치하여 정치 정상화를 이끌어 내자는 출중한 제안이었다.
지금 노인들의 발언권이 위축된 채 국민의 힘과 더불어 민주당이 파열음을 내고 있는 마당에 원로 정치인들이 중재역을 맡는다면 정국 정상화에 정립 황금분할론이 제격이 될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원칙을 찾아도 노년, 중년, 청년세대가 소통화합, 협치를 이루는 것이 순리이다. 선거 때마다 썩은 정치인들의 득표 수단으로 청년층을 회유해 그들을 지나치게 권력의 한가운데 세워 놓았다.
우리 고령층 인구는 2025년에 1천4백만을 넘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넘는 고령층을 완전히 밀어 내고 중년, 청년층만이 나라를 끌고 간다면 이게 바로 모순이 아닌가.
미국 전·현직 대통령 트럼프와 바이든은 각각 76, 80세인데 우리나라는 586세대가 물러나야 한다고 한편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가관이 아닌가.
노인층의 저력, 경험, 잠재력은 귀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세대교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명분으로 노인층을 장외로 몰아내는 것은 무질서 패망의 지름길일 뿐이다.
아직도 싱싱하고 유능한 많은 노인 인재들이 은둔, 이민, 칩거에 들어가 있는 안타까운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비극이다.
물론 노인들 스스로가 허황된 탐욕으로 사사건건 분수도 모르고 끼어드는 천박한 추태도 금물이다. 무기력하게 자포자기, 주저하지 말고 나라를 이끌고 가는 세대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소외된 노인층의 기본권을 보호 대변하는 길일 것이다. 노년, 장년, 청년층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571)326-6609
<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