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作於細(필작어세)
2022-06-09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이 말은 ‘어려운 일을 할 때는 쉬운 데서 시작하고, 큰일을 할 때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세세한 일에서 일어난다(天下大事 必作於細/천하대사 필작어세)’라는 노자(老子)의 도덕경 63장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두 구절은 같은 뜻인 듯 하면서도 그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약간 다르다. 즉, 첫째 구절은 어떤 일을 할 때 작고 쉬운 일부터 먼저 시작하면 큰일을 하는데 닥칠 어려움도 잘 극복 하여 잘 할 수 있다는 뜻이고, 둘째 구절은 세상의 큰일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으로 가령 무슨 일이든 작다고 경솔하게 다루지 말고 더욱 조심하여 세밀히 살피면 큰 화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춘추시대 말기 명의로 알려진 편작(扁鵲)이 제나라 환공(桓公)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그의 병세가 피부에 있다 하였으나 환공은 무시하였고 열흘 후 다시 편작이 그를 만나 이번엔 병이 살갗 속에 있다고 하였으나 역시 무시하였다.
열흘 후 또다시 편작이 그를 만나 그의 병이 창자와 위 속에 있다 하였으나 환공은 또 무시하였고 열흘 후 편작이 다시 환공을 만나러 와서 보고는 아무 말도 안하고 이웃 진나라로 달아났다. 환공의 병이 이미 골수 속으로 깊어져 치료가 불가능 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닷새후 환공은 죽고 말았다. 사물의 화와 복도 역시 피부와 같은 처지에 있으므로 일이 생기면 일찍 처리해야 함을 가르친다(한비자 유로편).
필작어세와 비슷한 뜻으로 선종외시(先從隗始)라는 말이 있는데 ‘먼저 외(隗) 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소왕(昭王)이 연(燕)나라 재상 곽외(郭隗)에게 인재를 구하는 방법을 묻자 ‘왕께서 현인을 구하려 하신다면 먼저 저부터 후대하십시오. 현인들이 천 리를 멀다하지 않고 찾아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왕이 곽외를 스승의 예로 대우하자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은(殷)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의 숙부인 기자(箕子)는 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어 오라는 것을 보고 상아 젓가락을 쓰기 위해서는 옥그릇을 쓰게 되고 옥그릇에 담을 진귀한 고기만을 먹게 되고 고대광실에서 호사스러운 옷을 입는 사치를 하게하니 상아 젓가락 하나가 화근이 되어 결국 나라가 망할 것임을 미리 알았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어느 날 화려한 옷차림으로 나타나자 ‘장강(長江)도 술잔에 넘칠 정도의 작은 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며 그의 작은 허세가 큰 교만함으로 자랄 수 있음을 꾸짖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1982년 메가트렌드(Mega Trends/거시동향)라는 9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유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John Naisbitt)은 이미 40여년 전에 아시아가 새로운 시대를 이끌게 될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그를 2003년 서울에서 열린 ‘차세대 성장산업 국제회의’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느냐고 묻자 “나는 여러 신문에 실린 세계 구석구석의 작은 기사를 유심히 본다. 이처럼 작은 일들을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하고 큰 시각으로 보면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감히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필작어세의 개념을 그는 미래 사회의 변화 예측에 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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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